위대한 대자연의 유산을 물려받은 캐너디언 로키. 신이 내려준 은총의 선물. 로키란 이름이 붙여진 사연 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거벽의 향연들. 빙하로 덮인 암봉들과 거대한 직벽들. 끝없는 대자연의 서사시가 펼쳐집니다.. 35억 년 전 바다 속에 잠겨 있다가 지각 변동에 의해 바다 속 지층이 충돌하면서 융기하여 장구한 세월동안 침식을 거듭하면서 바람과 빙하가 깎고 깎아 지금의 로키를 만들어냈습니다. 반프, 자스퍼, 요호, 글레이셔 등 4개의 국립공원이 이어져 있으면서 이를 통틀어 캐나다 로키라 칭합니다. 반프라는 로키로 가는 관문격인 소읍에 유황온천이 발견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면서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세계에서 년 5백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불러들이면서 그 독특함을 인정받아 세계 자연 유산으로도 인정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로키의 산들은 웅장하고도 거대한 위용으로 우리들을 압도하는데 시선 하나 두는 곳마다 장엄한 풍경이 만들어 집니다.
오늘은 서울시의 10배 면적이 넘는 반프 국립공원 내에 소재한 돌로마이트 트레일을 걷게 되는데 정상에 서면 백운암의 위세가 천하절경으로 버티고 서있는 돌로마이트(Dolomite Pass) 고개 마루 까지 오르는 길입니다. 석회암의 일종인 하얀 백운석이 켜켜이 세월을 품고 하나하나 쌓아간 직벽. 그 숨 막히는 비경을 보기위해 발품을 부지런히 팔아야 하는 곳입니다. 죽기 전에 꼭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캐나다 로키. 그중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빙 코스인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타고 북상하다 코발트빛 신비한 색으로 유명한 보우 호수에서 출발하여 이를 내려다보면서 오르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길입니다. 반프에서 보우호수로 이르는 도로 군데군데 네 곳에는 아리송한 다리 밑을 지나게 됩니다. 그리 크지도 않으면서 다리는 다린데 이어지는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차량이나 사람이 아닌 야생동물들이 안전하게 찻길을 건널 수 있도록 배려한 다리입니다. 캐나다인들은 야생동물이 주인인 이 땅에 인간은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며 그 자연과 부속물들을 소중히 다룹니다. 지금까지도 로키의 자연이 때가 묻지 않은 채 청정한 그 자체로 남아있게 해준 인식의 소산인데 인간의 이런 소소한 노력이 있는 한 지구의 아름다움은 오래토록 지속될 것입니다. 산길을 가든 찻길을 가든 우리는 종종 엘크며 산양 떼며 작은 고퍼나 산 다람쥐 또는 거대한 곰까지도 자주 조우를 합니다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로키의 한 풍경 속에 어우러집니다. 그러나 결코 친밀감을 보인다며 가까이 다가가 터치를 할라치면 바로 보호본능의 공격이 따릅니다. 그저 멀리 두고 바라보는 사랑. 영원무궁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데 이처럼 자연과 야생과의 관계에서 우리 인간 사랑의 법칙도 배우게 된답니다.
아브라스카 빙원과 보우 호수를 조망하는 전망대 길 건너의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트레일 헤드에모여 모두 폴을 높이 쳐들고 파이팅을 외칩니다. 5백 미터의 높이를 3km로 나누어 오르고 호수에 이르는 또 다른 3km를 업 앤드 다운하며 걷다 마지막 1km를 3백 미터 고도로 올라 정상에 도달한 후 되돌아오는 왕복 형태입니다. 이번 트레킹은 복을 아주 많이 받은 우리들입니다. 열흘간의 일정 중 단 하루만 비가 내렸지만 이날 일정을 변경해서 관광위주로 하였더니 나머지 모든 트레킹이 보석처럼 빛나는 로키의 청정 기류 속에서 이루어졌으니까요. 싱그러운 로키의 바람을 등에 지고 등정에 나섭니다. 이내 펼쳐지는 특별한 풍경. 나무들이 주목만 검게 남았고 가지며 잎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산불이 났던 것입니다. 로키에서는 종종 지엽적으로 산불이 난답니다. 그래도 애써 진화하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도록 내버려 둔다는데 이는 생태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며 결과적으로 자연의 순환을 야기 시키고 자연 자체에게도 야생동물에게도 좋다합니다. 그런 자연 치유가 없다면 숲은 병들고 늙어가는 것이기에 산불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합니다. 그런 산불이 지나간 자리. 치유의 숲에는 각종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난스레 연보라 빛을 발하며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원정하듯 바라보는 물망초. 그 곁에서 친근한 손길을 내밀어봅니다.
한참을 헐떡대며 고갯길을 오르는데 산은 우리들에게 잠시 쉬어가라며 수려한 풍경하나 내어놓습니다. 아브라스카 빙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설산 군을 품은 보우 호수가 절묘한 구도를 유지한 채 우리를 맞이합니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풍경하나. 그래서 한 숨을 돌리며 앵글에 담습니다. 달콤한 휴식도 잠간. 또 다시 길을 재촉해야 합니다. 우측으로 펼쳐지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의 길을 따라 도열한 로키의 대 협곡. 검푸른 침엽수림들이 바탕칠을 했다면 푸른 산 흰 산이 번갈아 가며 화폭을 채우는데 바람과 구름이 그 배열을 흩트려 놓으니 이내 또 다른 풍광이 창조됩니다. 이처럼 로키의 모습은 그날 날씨와 기온이나 채광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합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짙었던 숲을 지나고 나무들의 키가 점점 작아지더니 전망이 탁 트이면서 드넓은 목초지가 펼쳐집니다. 천상의 화원. 로키의 트레킹 적기는 6월부터 9월 까지로 보는데 특히 7월과 8월에는 이런 야생화들이 순번을 메겨놓은 듯 이어서 피어냅니다. 순색의 야생화들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화판. 보라 노랑 연분홍 하양.. 더없이 푸르고 푸른 로키의 하늘을 배경으로 앙증스런 색감의 향연을 펼쳐 보입니다. 이런 길을 걸으며 오감을 열어두면 자연이 갖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어 자연의 표정과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습니다. 바람이 전하는 로키의 전설도 함께 들으며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이내 호수에 다다랐습니다. 산마루를 덮은 빙하들이 녹으면서 흘러내려 호수를 이루었습니다. 차고도 맑은 물입니다. 물은 자연의 거울. 그 거울을 통해 내 진정한 모습을 투영해보고 비록 잠시지만 내 삶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세월의 간격마다 아로새겨진 내 변해가는 모습. 더욱 아름답게 살리라 다짐도 해봅니다.
또 하나 선경 아래 신의 정원에서 점심을 즐깁니다. 밥맛이 너무 좋아 평소 두 세배를 더 먹는다고 행복한 불평들을 합니다만 그래도 밥씸이 보태져야 명산을 오를 수 있으니 넉넉히 드시라 위로를 합니다. 밥을 먹으며 바라보이는 우리가 올라가야 할 길. 선명하게 정상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오르는 자 봐주는 이가 있어야 그림이 완성된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동무들을 남기고 마지막 돌로마이트 고개를 오릅니다. 캐나다 로키는 수천을 오르고 올라야 빙하나 설산을 밟을 수 있는 히말라야와는 달리 그저 수백 미터만을 올라도 수 만년 세월 위를 걸을 수 있고 조금의 발품만 더 판다면 산이 지닌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죽기 전에는 한번은 와봐야 한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이죠. 오르면 오를수록 달라지는 목전의 풍광들. 여기저기서 느닷없이 설봉들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비록 험한 길이지만 이런 산길을 걸으며 자연과 호흡하는 순간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철저히 보상해줍니다. 힘들게 오른 만큼 주어지는 자연 풍광의 극치. 정상을 오른 자에게만 주어지는 감사의 선물입니다. 아래서는 보이지 않던 거대한 성곽처럼 축성된 Dolomite Mountain. 독특한 빛깔의 거대한 암산으로 또 다른 이승에서의 풍경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저승으로 이어져가는 시작점인 듯 우리가 왔던 길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입니다. 이어서 절벽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 최종 전망대로 이동합니다. 수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정지된 시간을 바라봅니다. 멀리 빙하 위로 점점이 흩어진 거대한 바위섬들. 순백의 아브라스카 빙하가 더욱 빛을 발하고 주변에 포진한 크고 작은 만년설 산들이 로키를 더욱 산답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껏 항상 나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켜온 산. 산은 나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팍팍하고 힘겨운 삶이 무거워 산을 찾으면 언제나 고향의 어머니 같은 산은 위안의 장소로서 내 영혼이 맑아지고 생에 대한 투지를 불붙이고 가는 곳입니다. 또는 의지가지가 약해져서 방황 같은 흔들림으로 내 삶을 주체할 수 없을 때도 산은 내 어머니처럼 매서운 회초리를 듭니다. 약해지면 아니 된다고.. 그래서 새로운 삶을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산. 이 아름다운 로키의 한 정상에 서서 깊은 숨을 내몰아 쉬어 봅니다. 폐 속이 맑아지고 머리마저도 깨끗해집니다. 나는 다짐합니다. 내 다리가 허락하는 한 나는 산을 오를 것이며 단 한사람이라도 동행하는 이가 있는 한 나는 또 다시 길을 나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