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로키의 설산 미봉에 매료되어 산속을 헤매고 다닌지 일주일. 이제 뻐근한 다리와 부족한 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셔대던 소맥의 후유증으로 몽롱해진 동공에 명경에도 마저 취해버려 이제는 아예 야맹증 환자처럼 비몽사몽이렸다.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아버리는 산동무들. 오늘은 산행대신 물놀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트레킹 초반부에는 로키의 이상기온으로 한여름의 열기를
뿜어내더니 이내 원래의 날씨로 돌아가 쾌적하게 산행을 즐길수 있었습니다만 오늘 다시 30도 이상의 최고 기온을 찍는다 하니 마침 잘됐구나 하며 중간 정비를 하며 오후에는 레프팅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오랫만에 기상 시간이 정해지지 않아 아침 시간을 한없이 향유하는 느긋하고도 자유로운 느낌. 몸에 베인 기상시간 때문에 아무리 느기작대도 7시 일어나 밥하고 찌개 끓이고 불고기 까지 볶아놓고 기다려도 노인성 새벽 기상자만 한사람 기척을 보일뿐 산장이 고요합니다. 많이들 피곤하고 잠이 부족했었나 봅니다. 연일 이어지는 고되지만 그래도 행복한 등산. 아무도 낙오없이 흥겹게 걸었고 밤이면 이런저런 이벤트에 보통 취침시간이 1시에서 3,4시. 철인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견뎌낼수 있겠습니까.. 기다리다 못해 11시 쯤해서야 스스로의 약속을 파기하며 기상을 외치고 말았습니다. 1시부터 레프팅 투어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시간이 빠듯. 서둘러서 센터에 도착. 간단한 안전 사항과 항해 요령 등을 교육받고 다른 곳과는 달리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강인데 수온이 4도 이하라 모두 스쿠바 다이빙용 파마존스 Wet Suit를 몸에 끼게 입고 위에도 마찬가지로 방수용 자켙으로 중무장을 하였습니다. 물론 벙어리 장갑에 안전용 헬멧도 착용하고요. 이 여정에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이른바 Waiver Form을 작성하고 농담삼아 머리카락 손톱 깍아 제출하라고 지시합니다. 한두사람 제외하고는 레프팅의 경험이 없는지라 반은 모험심에 상기된 모습이지만 조금은 염려의 어두운 그늘이 표정에 지워집니다. 제 2외국어에 능통하지 않은 참가자를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하고 경험담을 들려주며 적극적으로 즐기기를 권유합니다. 내가 늘 무대위의 주인공이고 이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야 생이 즐거운 법입니다.
포말로 부서지는 물쌀을 가로지르며 항해하는 맛. 언제 보트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긴장감. 희박하지만 아예 보트가 뒤집어져버리는 아찔한 맛. 이런 모든 가능성을 정면으로 맞설 준비를 하고 그 도전을 즐기리라는 다짐으로 모두 노를 하늘 높이 들어 홧팅을 외쳐봅니다. 현지 외국인이 무슨 뜻이냐 해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외치는 함성이랬더니 오늘 구호는 모두 홧팅으로 하자며 외국 친구들에게도 따라하기를 종용합니다. 원어명 Fighting이 한국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홧팅으로 바뀌어버린 언어의 변천사를 봅니다.
레프팅은 5등급 까지 난이도를 나눕니다. 5등급이 가장 위험하며 대개 댐을 방류시키거나 큰물이 져서 유속이 가장 빠를 때 실시하는 것으로 보트가 종종 뒤집어지기도 합니다만 우리는 3-4등급의 난이도가 포진된 코스를 주문했습니다. 그레이 워터 레프팅이라 이름 지은 이유는 석회질의 빙하 강물이 가까이서는 회색으로 비치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강물도 높은 지대에서 내려본다면 아마 녹색으로 반사되었을 것입니다만. 코스타리카 같은 밀림 정글에서의 레프팅은 그린 워터 레프팅이 되죠. 자. 항해는 시작되고 이제 모두 모험의 여정에 적극적이 되어갑니다. 점점 간댕이가 부어간다는 거죠.. ㅎ 부딪히고 공중 부양을 하고 파도에 온몸이 적셔오고 빙점에 가까운 차가운 물벼락을 맞으며 섬뜩해하고 외침과 비명과 웃음이 마른 로키의 하늘을 공명하며 흩어집니다. 잔잔해진 수면에서는 고의로 물싸움을 걸어봅니다. 노로 뿌려대는 물싸움
한바탕. 여기에는 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동심속의 전쟁입니다. 뜨거워지던 한낮 로키의 태양볕이 말뒷발굽질 강물의 차가움에 한풀 꺽이고 마는 오후입니다.
이래저래 대여섯 시간여의 여정을 마치고 우리의 표정들이 그대로 찍힌 사진과 동영상을 담은 USB를 사들고 산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웃도어의 진수를 맛본지라 그대로 이어져 오늘 저녁은 캠프 화이어에 야외 식탁에서 한잔. 결혼 30주년을 기념하여 단 한쌍만이 커플로 참가한 부부를 위해 야생화로 헤드 밴드를 만들어 머리에 씌어주었습니다. 이어지는 축하주와 말씀의 세례. 그런데 축하사가 아닌 악담으로 흘러갑니다. 왜 도시락을 지참해왔느냐? 30년 지겹게도 살았네. 얼마나 매력들이 없었으면 아직까지 그러고 사냐? … 모두 웃고자 하는 악의없는 농이겠지요. 파안대소 흥겨워지는 연회는 밤이 이슥할수록 익어가고 로키의 청정 밤하늘에는 유난히 커보이는 보름달이 내려다 보며 빙긋이 웃고 있습니다. 무수한 별들이 내려 쏟아지더니 마른 장작으로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 속에서 튀어오르며 다시 태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