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세의 여성인 M씨는 학창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혀온 두통을 주소로 필자를 내원했었다.
거의 20년 이상 두통을 달고 살았다고 하시면서 혹시나 통증 클리닉에서는 무슨 치료가 있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하셨다.
사실 두통의 치료는 진단만 정확하다면 상향 평준화가 되어가는 경향이라서 필자와 같은 통증 전문의를
굳이 방문해도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만성 두통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그냥 포기하고 사는 환자가 매우 많은 것 역시 사실인듯 하다.
어쨌거나 M씨의 경우는 문진과 이학적 검진을 통해서 결론을 내린바로는 편두통이 확실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치료는 한국에서 가져오셨다는 두통약을 아플때마다 드시는 것이 다였다고 했는데 필자는 무슨 약을 드시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져오신 약을 살펴보니 한국에서 의사생활을 했던 필자이지만 거의 식별할 수가 없었는데 한가지 확실히 구별되는 약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에서 흔히 ‘벤조’라고 불리는 benzodiazepine계열의 항불안제였다.
항불안제는 정신신체질환에 효과가 있어서 소화장애, 불면, 불안, 우울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두통과 같은 질환에도 종종 사용되는 약이다.
하지만 이런 약은 장기적으로 복용할 때는 약물 의존성이 생기고, 약을 갑작스럽게 중단하면 금단증상까지 일어나며,
심하면 사망조차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무서운 약이기에 필자는 두통 치료의 목적으로 절대 사용하지 않는 약물이다.
그런데 M씨는 이 약만 복용하면 두통도 가시고, 마음도 편해지고 수면도 잘 취할 수 있어서 이 약을 꽤 오래 복용해왔다고 했다.
필자는 일단 환자에게 이 약의 위해를 잘 설명하고 앞으로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으니 서서히 줄여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이미 오래 이 약을 복용해서 의존성이 많이 생겼을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흔쾌히 이 약을 점차 줄이겠노라고 약속하셨고 필자가 장기적으로
두통을 조절하기 위한 약물치료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필자는 두통의 예방적인 치료에 중심을 두고, 진통제나 항불안제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치료를 하게 되었는데 M씨는 두통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며 기뻐하고 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만성 두통의 치료는 잠시 통증이 가시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통증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