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길. 피츠 로이와 세로 토레를 이은 길 (2)

물도 공기도 모두 그대로 마셔도 되니 사실 다른 것들은 필요 이상의 호사일 뿐… 유리처럼 투명한 시냇물은 수만년 세월이 녹은 빙하인지라 식수로도 최상이며 그저 장엄한 설산과 빙하와 호수를 감상하며 트레킹을 즐기라는 무언의 메세지입니다. 자연과 인간사이의 적당한 거리감을 둘 때 아니면 차라리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해질 때 더 오랫동안 공존하며 서로를 위하는 속 깊은 사이가 될 것입니다.

 

입에 단내를 풍기며 다다른 최종 전망대. 웅장하고도 날카로운 피츠로이 산들이 호수에 투영되면서 아름다운 물결을 일게 합니다. 상어 지느러미 처럼 날카롭게 솟아오른 화강암 덩어리 산인 피츠로이는 원주민들이 보기에 담배피는 형상과 같아 구름띠라 부른답니다. 흰 구름 두르고 서있는 봉우리. 그 연봉들의 위세가 도도하고도 그 자태에 자못 위엄이 서려있습니다. 바람은 골짜기보다 몇곱의 강도로 불어오고 가만히 시선을 두는 것 조차도 혹독한 정상은 몸을 제대로 가눌수 없게 합니다. 바람.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 했습니다. 차라리 피할 곳도 없는 이 몰아치는 바람을 즐기며 머리카락이며 옷자락을 여미지 않고 바람에 모두 날려보내 봅니다. 타이타닉의 주인공이 되어 몸에 붙어 나부낄수 있는 것은 모두 바람에 날려봅니다. 파르르 하고 떠는 바지며 소매들. 자유가 넘쳐 날개를 달고 힘찬 비상을 이룰수 있는 콘도르가 된듯합니다. 내친 김에 모두 바람에 실어 보내버립니다. 지고온 삶의 지꺼기도 못내버리지 못하고 가져온 미련의 기억마저도..

 

이제 하산을 하는 시간. 시간과 공간의 개념조차도 아득해지는 파타고니아의 수림지역을 통과하며 이슬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난 들꽃들의 환대를 받으며 계곡을 훑고 내려옵니다. 비. 바람. 햇살. 자연의 요소를 마음껏 보여줍니다. 오랜만에 맑게 개인 하늘은 파타고니아를 더욱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으니 이 티끌도 하나 없이 깨끗하게 미려한 자연에 감히 누가 흠집을 내려 들까? 그 고요와 평화의 정적이 깨어질까 조심스럽지만 발길을 분주하게 앞뒤로 번갈아줍니다. 발아래 넓은 초원 팜파스가 누워있습니다. 파란하늘과 하얀 산군. 바람부는 평원과 달리는 젖줄.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요소들이 서로 엉켜 전혀 다른 치명적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냅니다. 골마다 흘러내려온 빙하 녹은 물들이 팜파스 평원의 젖줄인 피츠로이 강물이 되어 이 척박한 파타고니아 대지를 적시며 풍요로움을 선사하여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온갖 불모지대의 꽃과 풀과 식생들을 아름답게 피워냈습니다. 우리는 다시 세월이 빚고 바람이 깎은 풍경속으로 태고의 시간을 간직한 채 길을 떠납니다.

 

우리는 이길 위에서 뜨거운 열정을 불살랐고 영원히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기억을 새겼습니다. 이곳 파타고니아에선 오직 자연만이 주인이며 사람은 단지 바람처럼 흘러가는 객일뿐이니 그저 우리는 향기처럼 왔다 오늘 저 안개처럼 흩어져 주는 것이 자연을 위해 우리가 보답하는길. 울지 않고는 떠날수 없다는 이길을 우리는 하늘에게 대신 울어달라 청을 넣고 바람따라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