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해안선 따라… Canes Head Coastal Trail (3)

육지와 바다의 간격이 가장 작은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잠시 간식도 먹을 겸 배낭을 내려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라온 한 젊은 커플에게 맥주를 권하니 좋아라 하며 넙죽 받아 마십니다. 이런 저런 의례적인 말을 섞다가 자기들은 이쯤에서 돌아가려 한다고 합니다. 물이 차오르는 High Tide로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가는데 까지 가겠노라고 허풍을 떨고 다시 해안선을 걷습니다. 개를 데리고 온 한 중년 커플도 막 도착한 다섯 인도인 가족들도 돌아갈 기색입니다. 뱉어버린 말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짐짓 의기양양하게 나아갑니다.

 

이내 닿을 것 같은 바로 보이는 저 더비 코브가 왜 이리 길고 먼지 스스로에게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해안선을 통과하게 되는 동굴 앞에 다다라 한 숨 돌리니 그 때서야 시장기가 음습하니 부랴부랴 불을 지피고 해서 치즈 라면을 끓입니다. 소맥 한잔 타서 마시며 라면 한 포크 입에 걸치며 도착하면서 지정해둔 바위를 확인하니 물이 제법 차오르고 있습니다.
만일 물때를 놓치면 다시 조수 간만의 차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아무도 없을 외딴 곳에서 몇 시간을 멍 때리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리나케 주섬주섬 배낭 속에 집어넣고 그래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맥주는 바지 옆 주머니에 꼽고 라면 끓인 코펠은 왼손에 포크는 오른손에 들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달리면서 먹으면서 씹으면서 마시면서..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이 야생의 자연에 나 홀로 있는데 누가 보겠습니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알래스카의 날씨. 구름이 두터워지더니 이제는 비까지 내립니다. 더욱 조바심에 남은 라면과 국물 버려버리고 출렁이면서 바지를 젖게 하는 맥주는 원샷으로 때리고 빈병 빈 코펠을 처치할 여유도 없이 그대로 양손에 들고 냅다 줄행랑을 칩니다.
걸어 온 만큼 되돌아가야 하는 길. 마음이 급하니 길은 더 멀어 보이고 온갖 불길한 상상이 다 떠오르고 왜 나도 그때 같이 발길을 돌리지 않았을까하는 통한의 후회도 밀려오고.. 이러다 패닉 오는 거 아냐? 라는 염려까지.. 그러나 다행히 위험구간은 넘었습니다. 가장 좁다는 지점까지 오니 충분한 여유가 있어 절벽을 타지는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아득한 길입니다. 가늠할 수 없는 길의 길이는 내 마음에 따라 달라 보이나 봅니다. 인간 만사 일체유심조라 했던가!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제법 성난 파도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척 하며 여유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또 다시 잰걸음으로 해변을 빠져 나와 예의 그 쥬라기 공원 숲속에 지어놓은 지붕있는 셸터에 들어가 비를 피합니다. 우의를 입고 배낭 커버를 씌우고 완벽하게 무장을 한 후 남은 술로 소맥 한잔 만들어 마시며 한모금의 담배를 피워 길게 내뿜습니다. 실은 안도의 깊은 한숨을 숨기기 위한..
이 때쯤 또 한 줄의 사자성어가 떠오릅니다. 인간 만사 무중부족 호사다마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