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전이라는 말이 싫다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이 유전에 의한 것이냐고 자주 물어본다. 예를 들어 “우리 엄마 허리가 아픈데 제 허리가 아픈 것도 유전인가요?” 라고 물어보거나 아니면 “우리 집은 고혈압 내력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고혈압 약을 몇년 전부터 복용중입니다.” 라고 자신의 문제가 유전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이 유전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 말이 의사의 입장에서 봤을땐 참 무책임하기도 하고, 환자의 입장에서 봤을땐 병에서 회복하려는 의지도 좌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의사 중에서 병의 원인을 모를때 유전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환자의 유전자 검사를 한 것도 아니고 환자의 부모나 그 위 조상을 검사한 것도 아닌데 무책임하게 유전자 탓을 하는 것이다. 원인을 모를때 유전자 문제라고 답을 하면 그 어느 환자도 더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참 편리하고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의사가 먹으라는 약을 잘 먹을 수 밖에 없다.


환자의 입장에서도 나의 병이 유전이라고 생각하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우선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는데서 오는 안정감,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병이 나의 잘못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나의 부모 혹은 나의 조상에서 부터 내려왔다고 책임을 전가시키는데서 오는 안정감. 문제는 이렇게 환자가 안정감을 얻는 순간 병을 고치려는 의지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이다. 더이상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된 생활 습관을 고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그대로 살면서 “나의 병은 유전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라는 생각에 휩싸여 약만 먹으면서 죽을때까지 병이 심각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유전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유전때문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더이상 내가 건강해질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후손은 유전자에 의해서 조상의 외모나 체질을 닮게 되어 있다. 그러나 꼭 조상이 가지고 있는 병을 후손이 물려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총알이 장전되어 있는 총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설사 병을 일으키는 미스테리한 유전자가 당신의 가문에 존재한다고 해도 이를 내가 잘 관리하면 병은 생기지 않는다. 결국 병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기 보다는 후천적으로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영어 구절이 있는데, “It’s not that diabetes, heart disease, and obesity run in your family. It’s that no one runs in your family.” 즉 나쁜 유전자가 전해져서 병에 걸리는 것보다는 몇 대에 걸쳐서 내려오는 잘못된 가족의 생활습관 및 환경이 병에 걸리게 한다는 말이다.

잘못된 생활습관과 환경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인체에 영향을 주므로, 초기에는 증상이 없다. 여기에 노화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몸이 약해지는 사십대 중후반이 되면 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잘못된 습관을 사십대 중반 이후부터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엔 해내어야 한다. 즉 이를 하루 아침에 바꿀수는 없고 전체적인 생활 습관을 평가하고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 조상탓, 유전탓 하면서 어차피 해도 안될거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건강을 방관하느냐, 아니면 비록 한계는 있더라도 좀더 노력해서 건강을 지킬것이냐. 만약 내가 나의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이를 나의 자식이 보고 배우게 한다면 조상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당신 가문의 만성적인 문제를 바로 당신이 끊을 수 있다. 당신이 당신 가문의 영웅이 될 수 있다. 결국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