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길은 반드시 열려요”
한인회장에서 페어팩스 시의원으로 “‘정치’보다는 ‘봉사’라는 어감이 더 좋아”
지난 5월 1일 열린 버지니아 페어팩스 시의회 선거의 최대 수확은 두 명의 한인 시의원이 탄생했다는 결과였다. 특히 38대 워싱턴 한인연합회장을 역임한 임소정 의원의 당선은 한인사회는 물론 주류사회에도 신선한 바람이었다는 평가다. “앞으로 수십년간 페어팩스 시의 발전을 좌우할 각종 프로젝트들이 산적한 시기이니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의정활동을 펼치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밝힌 임소정 의원을, 그녀가 수십년간 이끌고 있는 페어팩스 시 소재 ‘임소정 종합보험’ 사무실에서 만났다.
주류정치인으로 변신에 놀란 한인들이 많다. 솔직히 정치에는 뜻이 없었는데, 당시 상황이 지금의 결과를 만든 셈이다. 선거를 앞두고 섀론 불로바 페어팩스카운티 수퍼바이저 의장의 아들인 데이빗 불로바 주하원의원의 연락을 받았다. 페어팩스 시의원 선거를 앞두고 두 명이 은퇴를 선언했으니, 이번 기회에 시의원에 출마하라는 권유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넘겼지만 권유가 거듭돼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사실 선거에 출마하라는 제의는 한인연합회장 당시부터 받아왔다.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봉사자’로 각인되고 싶다.
시의원으로서 포부가 있다면. 페어팩스 시민들을 위한 인터내셔널 축제를 다운타운에서 개최해보고 싶다는 것이 목표다. 페어팩스 시 자체에 많은 이민자들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사는 이 도시가 다문화를 존중하며 소수민족들을 도울 수 있는 도시인 것
을 알리고 싶다. 페어팩스 시는 환경도 좋고 기본적인 인프라가 잘 설치돼 있어 대규모 축제를 개최하는 데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
지역 한인인구는 얼마나 되나. 그들을 위한 목표는. 나도 잘 알지 못했는데, 전체 3만 인구 중 한인 유권자는 3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각종 재개발과 건설 프로젝트들이 진행될 예정이라 한인 업주들과 거주자들도 점차 늘어가리라 본다. 한인 시의원으로서 한인들이 페어팩스 시 행정직원이나 봉사직에 등용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특히 오는 9월 중에는 주요 부서 수장들과 한인 상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특히 이 아이디어는 시 측에서 벌써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의원의 임무가 궁금한데. 선서를 하면서부터 일이 시작됐다. 당장에는 내일(편집자주: 19일)부터 주도인 리치몬드에서 열리는 초선의원 및 선출직 공무원 컨퍼런스에 참석해 강도높은 교육을 받게된다. 또한 각종 오리엔테이션도 받은 바 있다. 보통 의원의 2년 임기동안 두 세개 정도의 시 재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심의와 표결에 관여하는데, 앞으로 2년동안에는 처리해야 할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가 7개나 있어 그 어느때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하는 텀(term)이라고 하더라. 나도 어깨가 무겁다. 우선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중요사안은 27년의 임기를 채우고 은퇴하는 시티 매니저를 채용하는 일이다.
한인연합회장을 역임했는데, 시의원직에 도움이 되나. 한인회장이나 정치인이나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이들의 고충을 모두 처리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돕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시의원으로서도 지역 주민들의 이기심.. 일종의 님비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의 발전과 재개발로 불편한 점도 있을 수 있으나 시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페어팩스 시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2001년에 이 곳으로 이사왔는데 무엇보다도 이웃들이 정답다. 페어팩스 카운티라는 거대한 대도시 속의 소도시라는 느낌이 있다. 특히 공원이 많고 잘 정비되어 있어 아침마다 산책이 항상 즐겁다.
처음 어떻게 이같은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 처음 워싱턴 한인 연합회 린다 한 회장님 밑에서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이쪽 세계를 알게 됐다. 그런만큼 한 회장님께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나에게 숨쉬고 있던 무언가를 끌어내 주셨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게 된 것 같다. 한인사회에는 보다 많은 1.5세와 2세들이 나서야 한다. 그래야 한인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페어팩스 시의원에 동반 당선된 Sang Yi씨와의 관계는. Sang Yi 역시 한인 2세인데, 내가 한인연합회장일 때 주하원의원에 출마한다면서 도움을 청해와 처음 알게됐다. 이번에 시의원에 같이 출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서로 놀랐다. 다행히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6명안에 뽑히면 모두 당선되는 선거라 함께 열심히 임했던 것 같다.
임소정 보험사 대표로도 활약중이다. 보험업은 어떻게 시작했나.나는 11살 때 이민으로 미국에 왔다. 처음에는 IBM에서 근무했는데, 산후 육아 휴가로 주어진 기간 동안 우연히 보험일을 접하고 그 매력에 빠졌다. 솔직히 이 일이 너무 재미있고 모든 바가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1989년도에 보험업을 시작하고 1992년 임소정 종합보험의 문을 열었다. 지금은 워싱턴 지역 가장 큰 한인종합보험사 중 하나로 1만여개의 어카운트를 보유하고 있다.
처음 일할 때를 회상하면.그 당시 보험업에 종사하는 한국분이 별로 없었다. 한국 분들이 영어에 가장 애를 많이 먹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보험은 기본이고 손님들 가정과 비즈니스의 전기세, 전화비 대납은 물론 각종 통역까지 무료 봉사했다. DC의 험한 동네에서 일하시는 업주들을 찾아 낡은 지도에 의지한 채 차를 몰고가기 일쑤였지만, 그 당시만의 낭만이 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모든 작업을 서류작성에 의지했지만 가끔 그립기도 하다. 수작업인만큼 모르는 사항은 백지로 남겨놓아도 많은 경우 통과됐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전산 작업이라 한 조항에 정확한 답변을 기입하지 않으면 다음 번호나 다음 프로세스로 넘어가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가족을 소개해달라. 아들이 둘 있다. 그 중 둘째는 지금 한국의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들은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앞으로 그 분야에서 일하겠다는 각오가 있다. 지금은 여름이라 어학당에서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돌아오면 나와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동생은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사업을 하는데, 동생 역시 정치에 관심이 많다. 어바인 시의회 의원에 출마했다. 아버지는 박상철 목사로 원로목사협회장으로 봉사하시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