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에 누군가가 “요즘 미국경제가 어떤가요?”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뉴욕항구에 배가 얼마나 기항하는지, 옥수수 생산량이 얼마인지를 대답할 수 있어도, 경제의 개념은 측정이 불가했다. 그러나 경제상태에 대한 측정은 대공황이라는 위기를 통해서 새로운 필요성을 찾게 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전체가 얼마나 나쁜 상황인지를 알 필요가 있었다. 결국 Simon Kuznets라는 학자가 의회의 요청에 의해서 미국내의 모든 물자들의 생산량을 집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1934년에 “National Income 1929-1932”라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때부터 “National Income”이라는 개념이 국가의 경제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일부 지식인들은 하나둘씩 경제라는 개념도,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일정한 방정식과 변수를 통해서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경제 정책가들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려면 어떤 정책을 펴고, 경기활성화를 위해서는 또 다른 조치를 취하는 개념이 이때 생긴 것이다.
2차대전이라는 위기는 미국에게 경제의 통괄에 대한 또 다른 해결책을 요구하게 된다. 전쟁에 참전했다고 모든 옷공장들이 군복을 만들수 없고, 자동차공장들이 군용차만 만들수 없다. 그렇게 되면 미국경제 자체가 붕괴되고 만다. 일부 경제역사학자들은 미국이 2차대전에서 승리할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중에 하나는 이 경제의 원칙을 잘 이해하고 실행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후에 이 National Income이라는 개념은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민총생산량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순위를 정하듯이 GDP에 의해서 국가들을 서열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즉, GDP가 높은 국가는 선진국이고 낮은 국가는 후진국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냉전시대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제방식 결투를 GDP로 측정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GDP가 공산주의 국가들의 GDP보다 높았으므로,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그리고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GDP를 높이기 위해서 편법을 쓰기도 한다. 이태리는 일반적으로 GDP에 포함되지 않는 지하경제(마피아 범죄집단이 생산하는)가 크다. 자국의 GDP를 높이기 위해서 이태리는 지하경제를 GDP계산에 포함시켰다. 결과는 단 하루만에 이태리 경제가 영국의 경제를 능가했다. 그러나 실상 이태리의 경제는 하루전이나 영국을 능가한 하루후에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자신의 체감온도일 뿐이다.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이 GDP를 다시 보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Simon Kuznets마저도 GDP는 경제측정 수치중에 하나일 뿐이지 경제 전체판단수치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GDP는 삶의 질, 국민행복도, 사회의 만족도등을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시장도 경제에 있어서 큰 수치를 내포한다. 주택소유률로 따지면 2008년 금융파동 직전에 69% 정도로 제일 높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아메리칸드림의 주택소유률을 안정적인 62%에서 69%로 올리는 과정에서 서브프라임융자, 주택시장의 거품이 생겼다고 믿는다. GDP와 마찬가지로 숫자상으로 향상은 표면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때가 많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기에 Humanism(인도주의)를 배제한 발전은 그저 수치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