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래 근무하던 미국 로펌에서 나와 2022년 초 로펌 사무실을 연 후 고객들의 각종 세금 문제를 해결해오면서 올 한 해 2023년을 돌이켜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사무실 공간을 구매해서 인테리어까지 마무리해 직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뿌듯한 한 해였다. 올 한 해 울고 웃으며 열정과 떨림의 시간들을 함께해 준 고객분들 한 분 한 분께도 마음으로부터 고마움을 전한다. 새로 오픈한 사무실 한 켠에는 잘 부탁한다며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농작물, 집에서 직접 만든 무화과 잼, 촌닭이 낳았다는 계란 한 판 등이 쌓였고, 익명의 누군가가 농장에서 수확한 사과를 사무실 앞에 놓고 사라지는 고마운 일도 있었다. 이러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받았다고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고객마다 처한 현재 경제상황이 다르고 애초에 세금문제가 생겨난 배경이 다르므로, 국세청에 제출할 문서를 만들때는 고객들의 이야기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변호사가 아무리 법을 잘 알아도, 고객들만큼 본인들의 실제 상황과 배경을 야무지게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 로펌에서는 필요시에 고객들에게 “Taxpayer affidavit”을 자필로 써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Taxpayer affidavit 이란 일종의 진술서로 그동안 납세자가 처한 상황과 배경에 대해서 본인이 자세하게 설명하는 문서다. 상담 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중요한 부분이 생각나기도 하고, 시간대별로 내려가다 보면 사건의 인과 관계가 자연스럽게 맞추어 지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변호사는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쟁점을 선포하고 (ISSUE PRESENTED), 그 쟁점에 해당하는 법 조항을 찾아서 연결시키며 (RULE), 진술서와 미팅을 통해 알아낸 자세한 사실 관계를 앞서 적은 법 조항에 적용하여 고객을 최대한 옹호하는 입장을 분석, 피력하며 (ANALYSIS), 고객을 위한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는 일을 한다 (CONCLUSION). 이것은 바로, 로스쿨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IRAC’ 글쓰기 연습이며 실제 현장에서 매일 사용되는 기본적인 수련이다.
로스쿨 당시 가장 존경하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말하기 싫으면 또 다른 명칭이 있다고. 바로 글쟁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만큼 생각 정리와 목적을 가진 글쓰기가 직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로스쿨을 졸업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간 실제로 한국과 미국을 드나드는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세법 자문에 관한 문제들을 파고들면서 국세청을 상대로 변호하는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숨쉬는 케이스들을 해결하다 보니, 글쟁이라는 명칭이 적합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선망하게 되었음을 발견한다. 고객들을 위해 싸우는 글을 잘 쓰려면, 그들의 상황을 정말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작은 부분까지 애정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오늘도 문제가 해결된 한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끝내주는 고객 후기를 남겨줄 거라며 고맙다는 말로 홀가분하게 떠나지만 그의 사건을 열정적으로 다루었던 우리 사무실에는 묘한 여운이 남는다. 분쇄기에 필요없게 된 문서들을 넣고 파일을 정리한다.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조금씩 변화해가는 서로의 삶을 보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출한 책상에서 다음 케이스 파일을 열며 올 한 해를 차분히 마감하려 한다.
Sammy Kim
Attorney at 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