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겨울은 매운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호기를 부렸더니만 우랗 산맥에서 시작된 북극 한파가 꼼짝달싹 못하게한다.게다가 연일 이어진 시간과 싸움에 저질 체력이 바닥을 친대다 윗 입술은 마치 화산폭팔을 할 기세로 울퉁불퉁 제멋대로 불규칙스럽게 물집이 나있다. 시간이 답인지라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천연꿀을 수시로 발라 주는 것이다.체온과 결합한 꿀물 또한 어느세 달달하게 입속으로 스며들어서 그리 나쁘지 않다.그러고 보니 꿀의 용도는 내가 음식을 하는데 있어서 다양하게 쓰여진다.올리고당 대신 꿀을 ~~ 설탕대신 꿀을~ 그뿐인가 이렇게 민간 요법으로 연고보다는 꿀을~ 목이 따끔거리면서 일차적으로 목감기가 오려고 준비중이면 후다닥 물을 데핀 물에 꿀을~ 특히나 음식중에도 마지막 윤기 좌르르 비쥬얼을 만들기 위해서는 참기름이나 꿀로 옷을 입혀준다.그중에서도 잔치 음식중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잡채에도 나는 꿀을 넣어 맛의 깊이를 한층 더한다. 이렇게 나의 꿀사랑은 가끔 신선한 재료가 아닌 선택으로 매우 “꿀꿀한 음식”이 만들어진다.그 난감함은 몇년이고 아주 오래오래 영원히 변치 않을것 같은 냉장고에서 꺼내 순간 시작된다.그 시작은 미약하나 그 맛은 창대하게 꿀꿀하리니…
우선은 갖은 야채나 버섯을 채썰어 각기 다르게 색이 빠지지 않는 순서로 볶는 과정이 번거롭다.그러다보니 나는 주로 “해물잡채”를 선호하는 편이다.하지만 그또한 신선한 해물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잠재돼있는 다중성격님이 외출하시어 화의 불을 당기시니 여간 스트레스가 아닌건 사실이다.꺾어지는 허리 자태와 정교한 부채꼴로 펼쳐진 꼬리, 그리고 그 사이에 등골이 휘어진 지점을 정확히 이쑤시게로 조준하여서는 꼬리까지 관통돼 있는 창자를 빼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어느세 나의 발걸음은 사뿐이 즈려밟고 냉장고로 총총히 향한다.그리고 언제, 어떻게, 누구와,몇시에 해먹었는지 가물가물 거리는 기억을 더듬는다. 스스로 중얼중얼 “얼마 안됐을꺼야”를 되뇌이며 확인 안된 것들을 뜨거운 물에 소독 해준다.나의 음식에 대한 악행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해물탕을 해먹었는지,아니면 해물전을 해먹었는지, 홍합이며 잘게 썰어진 오징어며 정체모를 조갯살이 섞여 있는걸 보는 순간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를 보는 꼼수를 자청하고 만다.역시나 잘못된 선택은 녹록치 않는 결과를 낳는다.우리가 가끔은 현실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을 선택했을때 점점 깊이 있는 자신의 자존감과 함께한 사람들과의 의리가 지워져버리는 안타까움이 있듯이…그 의리의리하게 의리를 외치며 떠벌린 내 자신도 당장의 현실에 흔들렸듯이 부끄러움은 오롯이 내게 주어진 결과의 흔적인것이다.음식이라고 다를게 아니다.당장의 기다림과 수고로움을 참지 못해 냉장고와 손을 잡고 만든 “해물잡채”맛은 뭐랄까?? 한마디로 가기 싫은 병원에 갔을때 불쾌하고도 텁텁한 소독약 냄새 같은?? 게다가 질긴 질감은 또 어쩔거야~~~ 결국에는 “신선한 재료를 부탁해”라고 아우성치는 마음의 소리에 다시 손을 잡기로 했다.
먼저 신선한 오이 먼저 돌려 깎아 채썰고,빨강,노랑,주황의 파프리카를도 채썰어 각각 볶아준다.여기에 얼음속에 숨죽이며 자신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수염으로 손짓하는 새우를 다듬어 간장과 후추로 살짝만 밑간해두고,신선한 오징어 또한 정교한 칼집을 내어 채썰어 밑간해준다.이렇게 해물잡채를 만들기 위한 신선한 재료가 준비됐다면 각기 다르게 쎈불에서 재빠르게 볶아준다.이때서야 쫄깃함으로 등장하는 잡채는 팔팔 끓는 물에 8분정도 삶아 찬물에 헹궈 물기를 빼준다. 그리고 깊고 넓은 팬에 오일을 두루고 잡채넣고,신선한 재료들로만 엄선된 해물과 파프리카를 넣고, 마늘로 양념된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이제는 빠져서는 안될 참기름으로 고소함으로 장식하며 향긋하고, 달달한 꿀을 넣어 품위있게 빛나는 옷을 입혀준다.마침내 신선한 재료가 들어간 해물잡채는 자신에게 꼭맞는지 그제서야 건간한 맛을 선사한다.정직하거나 혹은 둘러치거나…사실은 엎어 치든 매치든 사용 되어진 에너지와 시간은 결국 한끝!! 차이란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