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3년차 배우 장혁(42). 그는 요즘도 매일 싸이더스 사무실에 출근하다시피 한다. 촬영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회사원처럼 출석표를 찍는 것은 신인 때부터 해오던 일과다.
“3층에 가면 제 방이 있어요, 부산에서 올라온 뒤 2~3년을 회사에서 살았죠. 맨날 가다 보니 사무실이 이젠 편해졌어요. 사무실에 가면 여러 대본이 있고 다른 배우들에게 들어오는 것도 볼 수 있죠. 그러면서 공부도 되고, 연습도 되고, 시야도 넓힐 수 있습니다.”
장혁은 배우로서 자부심과 신념이 확고해보였다.마흔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청춘배우 못잖은 혈기가 흘렀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가 ‘이방원’ 역에 다시 도전한 이유 역시 이같은 맥락이다. “이방원에 대한 갈증이 있어 또 다시 이방원을 하게 됐다”는 그는 “야심가 이방원을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나의 나라’에서 그는 아버지 이성계와 형제들의 반대를 뚫고 옥좌를 쟁취하는 ‘이방원’ 역을 맡아 열연했다.
장혁은 “잘 알려진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선 지우는 것부터 해야 했다”며 “캐릭터를 넘어서게 되면 불편해진다”고 강조했다.
“피의 군주가 아닌 인간 이방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순수의 시대’ 때는 미인계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래서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이란 사건의 배경 같은 느낌이 들었죠. 아쉬움이 있었어요. ‘나의 나라’에서 이방원은 무게감 있는 악역이고 흐름의 중심에 있어 움직임이 자유롭고 시원한 부분이 있었어요. 사료의 객관적인 사실 말고도 다양한 면이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양세종, 김설현, 우도환 등 20대 신예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이 드라마에서 그는 “오히려 많이 배운 것 같다”고 했다. “요즘 친구들은 해석도 좋고 공부도 많이 한다고 느꼈다”며 “내가 그 나이대일 때는 생각을 못했던 부분인데 지금 친구들은 저 나이 때 보여주는 걸 보면서 많이 깨닫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후배들이 그를 향해 팬심을 고백하는 것은 “실감 안 난다”고 했다. “아직도 난 현장형 배우라 생각하는데…”라면서도 “내 나이대 감독이 생기고 스태프들은 오히려 더 어리고, 현장에 가면 조금 어색하고 외로워지기도 한다”며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제가 20대 중후반에 ‘대망’이란 작품을 했는데 그 그릇을 담지 못했죠. 그게 너무 아쉬워서 그 이후로는 사극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지금 친구들이 저 나이에서 보여주는 느낌을 보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그는 유독 사극에서 폭발력을 보여왔다. ‘추노’ 이대길이나 ‘뿌리깊은 나무’ 강채윤, ‘빛나거나 미치거나’ 왕소 역 등 사극에서 활약하며 사극장인으로 불렸다.
“사극이 더 편하냐”고 묻자 “모두 다 나름의 재미와 장점이 있다”며 “사극이 저랑 잘 맞는 부분이 있다면, 현대극보다 더 극단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세상이기 때문에 연기에 업다운을 많이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사극은 현대극 보다 제약이 많은 시대다 보니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조금 더 날이 서 있죠. 내가 액션을 잘한다 해도 액션배우만으로 남고 싶진 않거든요. 그걸 장점으로 하되 좀 더 발전시켜서 다양한 정서를 포용하고 싶어요. 어떤 장르를 만나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달라 보이겠지만, 제가 또 사극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시대극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를 주로 연기했지만 아직은 조선시대가 가장 재미있는 것 같다”면서도 “다른 시대도 한번 연기해보고 싶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왕 역할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왕은 꼭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잖아요. 김영철 선생님이 이성계 역을 하면서 ‘아비로서 답하랴 왕으로서 답하랴’는 대사를 하는데 찡하게 오더라고요.”
1996년 데뷔 이후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장혁. 항상 다작을 하는 배우다. 어깨까지 오는 단발 헤어를 아직 고수하는 이유 역시 차기작 때문이란다. OCN 드라마 ‘본대로 말하라’에 곧 들어간다. 극중 프로 파일러였던 은둔자 ‘오현재’ 역으로 변신에 나선다.
“저는 23년간 연기를 쉬어본 게 군대 2년밖에 없어요. 이건 배우의 성향이에요. 저는 ‘현장에서 부딪히자’ 주의에요. 날 가르쳐준 건 현장의 그 많은 배우들이었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1년 전 나와 2년 전 나는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