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육식, 소금, 설탕, 글루틴, 지방, 술, 잠, 긴장, 통증…’ 같은 것들이 우리 몸에 끼치는 해악성에 대해 듣는다. 그렇게 이런 것들로 인해 건강을 해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나 보고서에 대해 접하다 보면 우리는 자연히, ‘아, 이런 것들은 원래 우리 몸에 나쁜 것이니까, 나는 가급적 이런 것들을 내 삶에서 멀리하면 건강해질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쁜 것을 피해서 건강을 챙기자니 할 수 있는게 몇 개 없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우리 몸에 안 좋은 것들을 하나씩 피하려고 좀 더 깊이 알아보다 보니, 막상 이 세상에 우리가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정말 몇 개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맛 있거나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거진 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니, 건강하게 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우리네 삶 자체가 걱정이고 고통이며 불안의 연속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상술들이 ‘채식, 저염식, 무설탕, 글루틴 프리, 저지방, 금주, 아침형 인간, 스트레스 없는 삶, 진통제’와 같은 키워드들을 만들어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운다. 정말 세상에는 왜 이렇게 나쁜 것, 피해야 할 것들이 이리도 많을까? 왜 우리네 삶은 이렇게 나쁜 것들이 가득할까?
어떤 음식이 건강에 좋고 나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내 몸과의 궁합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한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이 세상에 원래부터 누구에게나 건강에 나쁜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지금 내게 어떤 것이 결핍되었다면 그것은 그 순간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되고, 그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 그것은 내게 전혀 필요 없는 것, 즉 좋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에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차가운 에어컨의 존재는 감사의 대상이지만, 추운 겨울에 히터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에어컨이란 정말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쇳덩어리일 뿐이다. 하지만 이 한겨울의 에어컨처럼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불필요 한 것을 ‘좋지 않다’라 말할 수는 있지만, ‘나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이것이 음양론에 근거해 선악이 아닌 선과 불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만의 독특한 시각이다. 그래서 동양의 세계관에서는 ‘원래부터 나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나에게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것 자체에 내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궁합이 그 기준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쁜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것만 있을 뿐
‘나쁜 것(惡)’이 아니라 ‘좋지 않은 것(不善)’이 있을 뿐이고,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 ‘지식이 모자란’ 사람이 있을 뿐이며, ‘건방진 사람’이 있는게 아니라 ‘예의가 부족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건강에 나쁜 음식이 있는게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건강을 지키기에는 조금 부족하거나 지나친 음식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함으로 나쁜 것들을 피하려기 보다,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이니 어떻게 언제 사용하면 내게 도움이 될 것인가만 고민하자. 그러면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지금보단 참으로 쉬워질 것이다.
건강에 나쁘다고 알려진 대부분의 음식들도 잘만 사용하면 약이 된다
육식이나 염분을 무작정 거부하려 하기 보다는,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제 육식과 염분을 섭취하면 내 몸에 더 좋은 혜택이 있을지를 고민하자. (신체적인 부상을 당한 후의 육식, 운동중의 염분 섭취는 우리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무조건 금주를 부르짖기 보다는 언제 어떻게 술을 마시면 스트레스 해소와 육체적인 건강에 도움이 될지를 고민하고, (취하지 않을 만큼 섭취하는 소량의 술은 우리의 심장과 간을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든다) 통증을 외면하려고만 하기 보다는 지금 내가 느끼는 통증이 의미하는 것을 깨닫으려 하자. (통증은 내가 지금 무엇인가 잘 못 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알려주는 바로미터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네 삶은 원래부터 참으로 우리 몸에 좋은 것 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