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한가위,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함께 모여 추석 음식 나누며 나누는 대화가 정겹다. 둥그런 보름달이라도 환하게 떠 주었으면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추석이련만, 빗님이 훤히 뜬 달을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제 추석이 지났으니 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은 풍요롭지만, 그보다 곧 다가올 추운 엄동설한을 생각하니 추위를 이겨낼 수 없는 이웃들 걱정이 앞선다. “이불 하나 있는데 제가 가져가면 안 될까요?”라며 가을 이불을 들어 보이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왜? 이불이 없어요?”라고 묻자 “곧 겨울이 올텐데 두꺼운 겨울 이불이 없어요.”라고 한다. “그건 겨울 이불도 아닌데요.”라고 하자 “그래도 위에 하나 더 덮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라고 한다.
가을은 아름답건만,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는 어려운 사람에겐 가을이 끝나고 서서히 다가올 겨울이 더 걱정스러운가 보다. 다른 주에 거주하는 80세가 된 노인 부부가 노인 아파트를 신청하기 위해 그 먼 곳에서 버스 타고 이곳을 찾았다. “노인 아파트 나오면 이곳에서 살려고 해요. 그곳엔 한국 사람도 없고 너무 쓸쓸해서요.”라고 한다. “어떻게 저희를 아셨어요?”라고 하자 “인터넷에서 보았어요. 그래도 이런 데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라며 아기 같은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집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오후 5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노인 부부에게 “잘 되었네요. 오늘 추석이라서 이웃들 모시고 음식 먹으려고 하는데 같이 드세요.”라고 하자 ‘정말 미안해서 어떻게 해요.’라고 했지만, “너무 맛있네요. 송편도 먹고 여기 와서 추석 음식을 먹어보다니 정말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부부를 보면서 한국 사람도 없는 타지에서 너무 외롭게 살아왔던 흔적을 본다. 한 번 가면 다시 올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이제 너와 내가 함께 하면서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는 이 시간은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것이다. 노인 부부를 택시에 태워 드리자 “다음에 오면 꼭 다시 올게요. 이런 귀한 만남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요.”라는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그러세요. 꼭 다시 오세요.”라고 하자 “정말 저희가 잘 온 것 같아요.”라며 손을 흔들며 길을 떠나신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우리는 귀한 인연을 만들고 또 헤어지며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이번 추석 음식상은 너무 작고 조촐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사람과의 만남이 있어 마음은 풍요로웠다. 다가올 겨울,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있을지언정 서로의 마음을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까짓, 추위가 뭐 그리 큰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오. 누군가가 “요즘은 사람들이 정이 없어요.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요.”라고 하였다. 하긴 세상이 바뀌었는데 세상인심이 바뀌지 않은 것이 이상할 것은 굳이 없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가슴으로 정을 나눌 수 있는 여유는 있을 것이다. 내 것만을 고집한다면 그야말로 정 없는 세상이라고 말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가 각박하다는 것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도박에 빠진 누군가에게 “그런데 갖자 바칠 조공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 돕는데 후원하시면 어떨까요?”라고 하자 허허 웃으며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저도 살기 바쁩니다. 그냥 심심하니까 잠깐 가서 노는 것뿐이에요.”라고 하였다. 그런 사람은 나눌 수 없는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바보 같은 인생을 사는 천하의 일등 바보일 수밖에 없다.
함께 나눈다는 것은 기쁨이고 보람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그런 사람은 알 길이 없다. 보라! 도박장 기계에 아무리 많은 돈을 평생 갖다 바쳐도 그 기계는 그에게 감사할 줄 모르지만, 그 돈의 십 분의 일을 삶이 어려운 누군가에게 준다면 그 사람은 평생 감사의 말을 들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이번 추석에 좋은 시간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별것도 아닌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 이 시간이 있어서 우리는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이날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풍요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하였다. 기쁨과 행복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 누가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대신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의 어려움을 잠시 잊고 행복한 시간이 있어 그들은 감사하다고 하였다. 추석, 둥그런 보름달은 볼 수 없었지만,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어서 행복하였다. 사랑하는 한인 여러분, 보름달처럼 마음마저 풍요로운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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