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길, 자족의 길, 그레이트 오션 워크 (5)

이런 형태로 종주하다보니 아무래도 배낭에 들어갈 지참물들이 적어져 가볍게 걸을 수 있었고 그리하여 종주를 5일 만에 끝낼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습니다. 날이 거듭되고 하루를 마감하는 해질 무렵이면 강렬한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드넓은 해안과 울창하고 때묻지 않은 자연속에서 호흡하며 걸으니 어느새 여행자는 대자연의 품에 안긴 듯 평온한 위로를 얻게 됩니다. 특히 에어리버와 조안나 비치 구간에는 거목들의 가지 방향이 일정하게 향하고 있는데 남극에서 불어오는 혹독한 바람에 지쳐버린 현상이 장엄하면서도 애처롭습니다.

 

 

화산 작용에 의해 기묘하게 형성된 바위나 거대 암반들이 해안선을 가득 메운 셰리 비치는 문득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이 들게합니다. 조안나 비치를 수놓은 트레커의 발자국과 석양빛이 이국적인 느낌을 더욱 자아내면서 센티멘탈해지는 향수도 입니다. 오트웨이 등대를 두고 보는 먼 풍경이 더욱 아름다운데 돈과 시간이 투자되어야하는 등대와 박물관 방문은 하지않고 해안선으로 내려서니 귓가에 들리는 시원한 파도 소리가 트레커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고 청아한 바람에 실려가는 듯이 몸도 날려갑니다.

 

 

 

종주 동안 한두번 밤에만 살짝 뿌려준 비 이외에는 한번도 궂은 날이 없어 모두 착하게 적선을 해온 동행들의 덕이라 여기며 행복을 이어갑니다. 오늘은 종주의 절반 정도되는 캐슬 코브를 지났으니 날마다 연회지만 오늘은 특식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소맥에 와인까지 적백으로 마련하여 한잔 술을 곁들입니다. 청정한 초원에 방목한 호주산 소고기와 양고기까지 곁들여서 말입니다.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옥외 가스 바베큐 그릴까지 갖추어진 편리한 숙소. 트레킹이 이렇게 호사스러워도 되느냐며 너스레를 떨며 마음껏 즐깁니다. 잘 구워진 스테이크에 건배를 외치며 즐거운 담소에 소화도 잘되고 시금치 칼국수와 과일로 코스 요리를 마감합니다.

 

 

총총한 별이 어느새 맑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오늘따라 더욱 잠잠한 남극해는 저도 끼워달라고 한번씩 투정부리듯 물결을 보냅니다. 깨어지면 안될 듯한 이 완벽한 여행의 행복. 그래서 꿈과 생시를 넘나들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