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돌아와 잠간 정비를 한 후 본부로 모였습니다. 저녁 겸 야식이 되어버린 멸치 다시물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삶은 국수와 김치 그리고 양념장의 절묘한 조화. 이름하여 잔치국수로 고향의 입맛을 유지합니다. 새로 알게 된 길위의 동행들이 서로 자신을 소개하며 갖는 친교의 시간. 그리고 일정의 중요한 내용들을 브리핑하고 질의응답의 시간도 갖습니다. 여행은 잊고 살던 내 참 모습을 되찾아 보는 일. 같은 목적으로 다른 곳에서 온 나같은 사람들을 통해 나를 비추어 보기도 합니다. 참이슬. 오린. 시원. 지방 마다의 소주 이름입니다. 소주 한잔씩 꺽으며 마음은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길. 칠레 파타고니아의 W 트랙 그리고 페루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피추로 가는 역사의 길 잉카 트레일로 먼저 보내면서 말입니다.
잿빛 도시의 아침을 깨우고 부산한 움직임으로 길 떠날 준비에 잡곡밥에 북어국으로 해장 겸 한술 뜨고 공항으로 갑니다. 파타고니아의 거점 엘 칼라파테로 날아가기 위함입니다. 3대의 대형 레미스 택시를 대절하여 이동하는데 12명의 트레커들이 이래저래 줄이고 줄여도 캠핑이 포함된 짐들이 한차씩 가득찹니다. 소주를 포함하여 한국에서 가져와 준 한식 먹거리만도 세가방을 채웠습니다. 공항 수속 다 마쳐놓고 대합실에 있는데 특별히 알림도 없이 45분 지연된 비행기. 할 말이 없습니다. 여유라고 융통성이라고 봐주는게 내 뒤통수 잡아당기지 않게 하는 유일한 대처법. 3시간을 비행해 칼라파테에 도착합니다. 내 이름 쓴 피켙을 들고 마중나온 전세 버스 기사의 안내와 운전으로 또 세시간을 달려 한낮의 열기가 식아가는 무렵에 머나먼 세로 토레. 피츠로이의 고장. 엘찰텐에 당도합니다. 고원 평야 팜파스를 배경으로 앤데스 산자락에 고즈넉하게 누운 소담스런 산촌 마을 엘 찰텐이 품을 벌려 우리를 반깁니다.
여장을 풀고 우선 내일 야영에 필요한 텐트며 연료 등 필요한 장비와 악세서리를 사고 대여하고 마실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토요일이라 텐트의 대여가 용이치 않습니다. 그래도 일단 하나 플러스 하나이지만 준비해놓고 식료품 마트에 들러 먹거리 장도 보고 내 긴 그림자를 밟으며 숙소로 돌아와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특선 오늘의 요리를 또 하나 안데스 산자락에서만 재배된다는 말백 포도주와 함께 나눕니다. 모레는 비가 내릴것이라는 일기예보지만 내일은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인 Los Tres 호수는 맑은 날씨 속에 볼수 있다는 다행스러움에 부푸는 기대 다독이며 애써 잠을 청해봅니다. 가슴까지 끌어올린 이불의 감촉이 더할 나위없이 아늑한 산촌의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