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남성 환자가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필자를 찾아왔다. 환자가 말하는 피곤함의 정도는 환자생활의 전반에 영향을 미쳐, 환자는 매사에 에너지가 부족하여 아침에 매우 일어나기가 어렵고, 막상 아침에 일어나서도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하기에도 힘이 벅차다고 하였다. 환자에게는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특이할 점으로 환자는 얼마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고 이에 대한 치료를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환자의 피로감이 문제가 되기 시작된 것은 파킨슨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이라고 하였는데, 처음엔 우울증이 아닌가 하여 우울증에 대한 치료를 받아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울증에 대한 치료로 환자의 문제가 별반 좋아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여러가지 검사들을 통하여 필자는 환자의 문제를 다름아닌 ‘중추성 피로(Central fatigue)’라는 병명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아마도 이글을 읽고 계시는 많은 독자분들에겐 중추성 피로라는 이름은 매우 생소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경계는 크게 뇌와 척수를 포함하는 중추신경계(Central Nervous System)와 뇌신경, 척추신경, 근육을 포함하는 말초신경계(Peripheral Nervous System)로 구분 지울 수 있다. 중추성 피로의 중추라 함은 다름 아닌 중추신경계의 뇌를 가리키는 것으로 중추성 피로란, 곧 뇌의 이상으로 초래되는 피로감이라 할 수 있다. 중추성 피로가 왜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들이 있다. 그 중 매우 유명한 하나는 세로토닌(Serotonin)-도파민(Dopamine) 학설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과도한 운동을 하면 머리속에 세로토닌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때 피로가 유발된다는 사실에서 시작된 이론으로,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도파민이 역할이 추가되어, 뇌 속의 중요한 두가지 물질인 이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비율(ratio)에 따라 뇌에서 발생되는 피로여부가 정해진다는 가설이다.
즉 상대적으로 뇌 속의 세로토닌이 많아지거나 또는 도파민이 부족해질 경우 뇌로부터 피로감이 유발되어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파킨슨병으로 투병하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많은 설문 조사에 따르면 피로감이야 말로 환자 과반수 이상에서 가장 괴로운 증상으로 꼽히는 증상이라고 한다. 이는 파킨슨병이 도파민이 부족해짐으로써 생기는 뇌의 퇴행성 질환임을 감안해 볼 때 아주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2016년 유명한 학술지인 네이쳐(Nature)지에 발표된 ‘파킨슨병에서의 피로감(Fatigue in Parkinson’s disease)’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의하자면, 얼마 되지 않아 곧 중추성 피로에 대한 정확한 진단 방법이 나올 것이며, 또한 이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 바로 임상에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본 환자의 경우 현재까지 알려진 효과적인 치료방법들을 응용한 결과, 상당부분 피로감의 개선을 볼 수 있었으며, 더 중요하게는 치료를 통하여 환자의 삶의 질을 유의하게 높게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