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통곡 소리가 그칠 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저 여인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내 앞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잠시, 눈물을 닦으며 “죄송해요.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 눈물이 나오네요.”라며 눈물을 닦는다. “괜찮아요.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하고, 웃고 싶을 땐 웃어야 합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녀가 처음 보는 내 앞에서 통곡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은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슬픔과 애통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리라.
그녀가 말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미국에 온 지 어언 40여 년, 이민이라는 것에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의 결정에 따라 무작정 따라온 미국 이민,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며 두 아이를 열심히 키우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산 세월, 아이들은 다 성장하여 결혼하고 가정을 가졌고 이제 두 부부가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며 살자고 했지만, 어느 날 아침 달려간 응급실에서 남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눈을 감고 머나먼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 건가요? 너무 억울해요. 이제 나 혼자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그 여인은 지금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요?”라고 묻고 싶었다. 남편이 돌아가셨는데 나더러 뭘 어쩌라고 찾아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찾아와 통곡하며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이곳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녀가 우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니, 아들, 딸이 아버지가 남겨 놓은 유산을 상속해 달라고 하네요. 유산이라야 달랑 하나 있는 집과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이 조금 있을 뿐인데, 저희 몫이라고 달라고 하니 너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옵니다.”라고 하였다. 세상에 그래도 믿을 만한 곳이 있다면 그래도 내가 낳아 키운 우리의 자식일 뿐인데, 그것을 다 주고 나면 남편 없이 살아가야 하는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죽으면 다 저희 것인데, 그래서 지금은 줄 수 없다고 하니까 아예 말도 안 하고 오지도 가지도 않아요.”라며 또다시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문제였다. 돈이 없으면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을, 아예 없었다면 오히려 자식이 부모에게 더 큰 효도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너무 괘씸해서 인연을 끊고 싶지만, 그래도 자식과 부모는 천륜이라서 내 가슴에서 그 아이들을 지우지 못한답니다.”라며 “아버지가 살아있어도 그런 말을 했을까요?”라고 나에게 묻는다. 내가 그 여인의 자식이 아니라서 알 수 없지만, 인간 세상에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사람일진대, 그녀의 자식은 부모와 사람을 떠나 재물을 먼저 생각하고 있으니 정말 세상 살아갈 맛이 나지 않는다. “너희가 가져갈 유산은 없다. 그리고 내가 죽고 나서 남은 것이 있다면 그때 다 가져갈 뿐이다. 그러니 나에게 유산에 대한 기대는 하지 마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서러워 우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식이 자신에게 하는 행위가 미울 뿐이었고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다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미음이라는 것을 자식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이담에 자신의 자식이 자신들이 한 이러한 행위를 똑같이 저질렀을 때 그때야 그들은 그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녀에게 유언장을 작성하라는 말로 그녀를 달랜 후, 돌려보냈지만, 그녀가 ‘인연은 끊을 수 있겠지만, 천륜을 버릴 수 없다.”라고 한 그 말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가슴에 깊이 박혀있는 자식을 빼내고 싶어도 빠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제 막 은퇴한 그 나이에 남편을 잃은 것도 서러울진대, 자식들에게 받은 그 상처가 너무 커 처음 본 사람 앞에서 통곡해야만 했던 여인, 그래도 그 여인은 “우리 아이들이 무척 착해요. 그런데 저렇게 재산 상속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어요.”라고 하던 여인, 오늘도 그 여인은 자식에 대한 미련과 미움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자식은 아버지가 먼 세상으로 떠나는 그 순간,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재물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니 참으로 미덥지 않은 삶인 것 같다. 자신들을 위해 고생한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생각은 어디로 떠나 버린 것일까? 좋은 세상 제대로 한번 살아보지 않고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을 없는 것일까? 별안간 홀로 살아가야 할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면 자식은 어머니의 마음에 저렇게 깊은 상처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염병할 놈의 세상이 아니던가, 어찌 되었든 오늘은 그 여인을 위해 한 줄의 묵주기도를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