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남편

아주 먼 옛날, 갓 시집온 며느리가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조석이면 시어머니가 내주는 쌀로 밥을 지어 시부모를 모셨다. 밥때가 되면 시어머니는 커다란 바가지에 하나 가득 쌀을 수북하게 담아내 주곤 했는데 쌀의 양을 보아선 많은 사람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었지만 그녀는 항상 배가 고팠다. 시집와서 배부르게 밥을 먹어 본 적이 없는 며느리는 먹다 남은 밥 찌꺼기를 먹으며 겨우겨우 배를 채웠지만, 항상 배고픔으로 허리끈을 조여야 했다. 그 이유는 시어머니는 많은 양의 쌀을 내주었지만, 그 많은 쌀을 지을 수 있는 솥이 너무 작아 넉넉하게 밥을 지을 수가 없었다. 식구들의 밥을 담고 나면 밥솥에는 한 알의 밥도 없었다. 그래서 며느리는 방에서 먹다 남은 찌꺼기로 배를 채워가며 살다가 결국 굶어 죽은 그녀가 소쩍새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소쩍새가 우는 소리는 ‘소쩍, 소쩍’ 이가 아니라 ‘솥 작아, 솥 작아.’ 라고 운다는 것이다. 보기엔 너무 훌륭하고 너그러운 시어머니였지만 시어머니의 심보는 아주 고약하여 결국 며느리를 죽게 한 것이다.

 

 

“저 영감탱이가 저는 맨날 돈 잘 쓰고 다니면서 나에게는 돈 한 푼 안 줘요.”라며 아내가 투덜거리자 남편이 “아니, 먹을 것 다 사다 주고 가고 싶다는데 다 데려다주는데 뭐가 어쨌다고 그래?”라며 대꾸한다. 아내는 “내가 늙었어도 여자인데 얼굴에 바를 크림 하나도 없고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없는데 먹기만 하면 다 되는 게 아니잖아요.”라며 나를 쳐다본다. 남편은 “아니 집에서 맨날 뭘 바르는데 그건 화장품 아닌가? 옷도 옷장에 잔뜩 있는데 뭔 말을 하는 거야?”라며 냅다 소리를 지른다. 냉장고에 먹을 것은 있지만, “고기 한번 먹고 싶다고 해도 비싸다고 안 사고, 생선이라도 한 마리 먹고 싶어도 몇 번 사정해야 하고, 참 더러워서 살 수가 없어요.”라는 아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찌하여 소쩍새를 생각했을까, 그러고 보니 아내의 옷은 낡아 있었고 얼굴은 너무 건조하여 살갗이 일어나 있었다. 이미 은퇴하여 전보다 살기가 조금 어려워졌지만, 그에게 있어 아내는 그저 밥이나 해 주고, 빨래나 해 주는 그런 사람으로 전락해 있었다. “돈이라곤 교회 갈 때 낼 헌금 그것도 $1만 줘요. 감기에 걸려도 먹을 약이 없어요. 같이 살자니 참 더럽고 안 살자니 갈 데도 없고 그렇다고 자식한테 그런 이야기 하기도 그렇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소연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아니 감기 걸리면 무조건 뜨끈한 데서 한숨 푹 자고 나면 되는데 뭔 약 타령이야?”라며 눈을 흘긴다.

 

 

두 노인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남편만 믿고 산 그녀의 세월이 안타까웠고 그렇다고 무능력한 아내를 타박하는 남편의 모습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한평생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아내가 아니었던가, 좋은 옷은 아닐지언정 옷 한 벌 사줄 만도 하건만, 비싼 화장품은 아닐지라도 아내에게 영양 크림 하나 사 주었더라도 아내의 마음이 그토록 쓸쓸하고 서럽지만은 않았을 것을.
도박에 빠진 남편과 이혼했는데 남편이 “같이 살지 않아도 되니까 지하방에서 살 게 해 줘, 다른 건 모르겠는데 빨래하고 밥해 먹는 게 너무 힘들어.”라고 하였다. 아내가 “내가 미쳤냐? 내가 너한테 밥해 주고 빨래해 주게?”라며 거절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모든 남편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밥도 해 주고 빨래해 주고 있으니 데리고 산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스산하다.
아내가 있었기에 자식이 있었고 자식이 있었기에 가정이 생기고 그렇게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아내, 그렇게 살아온 아내의 마음은 몰라 줄망정, 남편은 이제 주름만 가득한 아내의 그 모양새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그저 있으나 마나 한 아내가 되어버렸다. 아내는 서러웠다. 자신만을 위하는 남편은 아닐지라도, 다정다감한 남편은 아닐지라도 고기 한 점, 생선 한 마리, 화장품이나 옷 한 벌쯤은 마다하지 않고 마련해 줄 수 있는 그런 남편이 없다는 것이 서러웠다. “내가 뭐하러 저런 인간하고 사는지 참 내 인생이 너무 서글프다.”라며 눈물짓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뭔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 빨리 가서 저녁이나 하지 않고”라며 버럭 소리 지르는 남편을 따라 아내는 훌쩍이며 몸을 일으킨다. “그러시지 말고 오늘은 외식이나 하세요. (Clonazepam) 마음도 그런데.”라고 하자 “외식 한번 할 돈이면 일주일 반찬거리 사는 게 납니다.”라며 헤헤거리며 돌아보는 남편의 모습에서 아내가 흘릴 눈물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쌀이 있어도 밥을 못해 먹어 죽은 소쩍새나, 돈이 있어도 먹고 싶은 것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내나 무엇이 다를까? 언제 갈지도 모를 인생, 언제 떠나가 버릴지도 모를 인생, 무엇 때문에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들은 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