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2월 23일 Federal Reserve Bank (연방준비은행)이 창립되었다. 연방준비은행의 창립에는 많은 과정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시작은 1906년 4월 18일 새벽 5시에 발생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었다. 이 사건은 보험회사들에게서 많은 지출을 요구하게 되었고, 주식시장이 50% 하락하고, 1907년에는 많은 은행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자금융자가 끊기고, 비지니스들은 자금난에 파산을 초래하게 된다. 이 당시 정부에서 이런 파국을 방지할 어떤 기관도 장치도 없었다. 결국 J.P. Morgan이라는 개인이 뉴욕의 개인자택에서 당시의 최대 은행가들을 소집해서 Trust를 설립하게 된다. 2천5백만불의 Trust를 설립하면서 J.P. Morgan은 은행가들이 동의서류에 서명할때까지 서재에 감금했다는 야화도 있다. 어찌되었던, 이 돈이 씨앗돈으로 자본이 되고, 다시 돌기 시작했고, 더 큰 파국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J.P. Morgan은 그 당시 이미 70세가 넘었고, 언제까지나 미국의 경제파국을 막아줄 수 있다고 판단되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의 경제의 생사를 단 한명의 자본가 능력에 의존한다는 것이 너무 아니라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공화당의 Aldrich 의원은 결국 Central Bank (중앙은행)의 개념을 시도했다. 초기 연방준비은행은 ‘Lender of last resort’ 즉, ‘자금융자의 마지막 보루’ 였다. 모든 은행들이 자금부족으로 융자가 끊겨도 중앙은행에서 자금을 융자해 준다는 개념이었다. 당시 유럽에는 이미 중앙은행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미국에게는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Aldrich는 다시 은행가들을 소집한다. 이번에는 비밀리에 조지아의 외딴 휴양지에서 은행가들에게 미국에 적합한 연방준비은행을 구상하게한다. 이로 인해서, 유럽과는 달리 미국에는 12개의 지역별 준비은행들이 생긴다. 그리고 이를 통괄하는 연방준비은행이 워싱턴 디씨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연방준비은행은 ‘자금융자의 마지막 보루’에서 Creator of Money (자본의 창출)로 조금씩 역활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완벽한 시스템이나 장치는 존재하지 않기에, 많은 경제학자들은 1920년대의 대공황이 오히려 연방준비은행으로 인해서 악화됐다고 믿는다. 또한 2008년의 금융파동이 연방준비은행으로 인해서 대공황으로 악화되지 않고, 불경기로 끝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만큼, 연방준비은행이 2008년 금융파동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어찌 되었던간에, 그 동안 연방준비은행에서 매달 86억불씩 돈을 찍어서 주택융자담보 채권을 구입해 준 결과로 주택시장도 다시 생기를 띄우게 되었다.
2014년에는 연방준비은행의 100주년을 맞아서 제닛 옐린(Jennet Yellen)이 최초로 여성의장으로 임명되었다. 드디어 2017년에는, 미국경제라는 환자가 연방준비은행이라는 의사의 치료로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고 느껴지고 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진통제에 익숙한 미국경제가 과연 휴유증 없이 회복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