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펜실바니아 로럴 하이랜드 봄의 교향악을 들으며
꾸무리한 하늘. 그 잿빛 하늘이 낮게 드리우고 있는 일요일 이른 아침입니다 . 전날 예고편처럼 가볍게 비가 뿌린데다 그 비가 화요일 까지 이어진다는 일기예보가 사뭇 불안하기만 한데 시원스레 달리는 차안에서 쾌청한 날씨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에 젖는 산행이 아니길 빌고 빌어봅니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걸으면 그 또한 운치있는 산행이 되지만 그래도 최상을 바라는 얄팍한 인간의 심리는 어쩔수 없나봅니다. 달리는 차창에 비가 뿌릴때면 나름 포기한채 비옷을 만지작거리고 또 조금 가다가 맑은 해가 구름에서 벗어날 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웃음을 짓기를 반복하며 기나긴 여정을 이어갑니다. 컴벌랜드를 지나 해발 1천미터의 준령을 넘을 때는 저 산아래에서 올려다 볼때는 구름이었을 짙은 안개가 가득해 지척을 분간할수 없어 차들이 거북이 행렬로 가야만 했습니다. 안개 구름을 헤치고 나아가 내리막길을 탄력을 받아 달리니 어느듯 햇살이 인자하게 구름밖을 나와 있었습니다.
68번 도로를 벗어나 40번 국도를 들어서서 스무마장 정도를 게으르게 달리니 드디어 펜실바니아 경계를 넘어 한적하고 좁은 길로 돌아가니 LAUREL HIGHLAND HIKING TRAIL(LHHT) 남단이 시작되는 OHIOPYLE 주립공원의 팻말이 나오면서 이내 아름다운 강의 구비침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오월이 되면 산월계수가 온산에 지천으로 핀다하여 지어진 이름인 로럴 마운틴에 만들어진 총연장 71마일의 LHHT은 Youghiogheny라는 기이한 이름의 강을 따라 구비구비 이어져 있는데 수려한 풍광이 압권인 트레일입니다. Yough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 강은 동부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는 화이트 워터 래프팅을 제공하는데 그 물이 청정하기로도 유명하답니다. 이른 계절인데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차량 루프에 장비들을 싣고 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보온 방수의 고무옷으로 무장하고 아직은 차디찰 강물을 헤집고 힘찬 출범을 합니다.
수면위에는 봄햇살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산행준비를 마치고 트레일의 시작을 근사하게 해줄량으로 건설한 트레일용 철근 다리를 건너 강을 끼고 오르기 시작하는 LHHT에는 봄이 화사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도도하게 흐르는 Yough강 수면위에는 봄햇살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부서지는 물결에 생선의 비늘처럼 반사되어 비치고 있었습니다. 이제 여리게 싹을 티운 잎새부터 연녹색의 신록은 산전체를 물들여가고 어느새 돌아들 왔는지 이름도 다 댈수 없는 다양한 산새들이 요란스럽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생각난듯 이따금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어린 잎들과 풀들은 저절로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는데 저기 저만치서 무적을 울리는 열차가 그 박자에 맞춰 다가옵니다. 철로를 따라 도열한 해묵은 전신주에 피곤한듯 늘어져 있는 전깃줄에는 로빈새떼들이 나란히 앉아 한결같은 동작으로 그 철마를 배웅합니다. 여운을 남기며 저 산허리를 돌아가는 열차를 보면서 우리도 함께 수많은 유년시절의 추억들을 실어 보냅니다. 여유있던 걸음도 이제 좁다란 시냇물을 가로 질러 만들어진 조그맣게 앙증스런 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45도 이상의 경사도로 오르는 본격 등산이 시작이 됩니다. 한사람이 오르기에 안성마춤인 좁은 길을 만나 이제까지 어께를 나란히 하고 나누던 정다운 이야기를 접고 산행에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턱에까지 차오르는 가픈 숨을 몰아 쉬는데 말을 섞을 겨를도 없이 정상을 향해 고난의 행군을 이어갑니다. 힘에 부친 연로한 산객은 큰 바위가 나오자 털퍼덕 주저앉아 아이고 소리를 연발합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같은 소리의 탄식이 들여옵니다. 휴식을 명할 겨를도 없이 모두 자진해서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바람은 우리의 처지를 아는지 시원스레 산등성을 넘어 불어옵니다. 이마에 흥근하게 흐르는 땀을 훔치며 올라온 길들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되돌아 보는 여유도 가져봅니다.
자연이 벌려준 생일 축하연
아무도 기다리거나 반겨줄 이도 없는데 우리는 오늘도 정상을 향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서 하는 고생으로 오릅니다. 인간은 미약하나 그 의지많은 지대하여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힘든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법을 우리는 산에서 배웁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깊은 골짜기가 발아래 펼쳐집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열심히 살아온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단순한 그러나 잊고사는 진리를 산에서 다시 배웁니다. 끝내 쳐져버린 한회원을 두고는 모두 정상에 올랐습니다. 칠순을 넘긴 노산객도 정상을 밟고는 스스로에게 그 대견함으로 기뻐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우리 모두도 함께 즐거워집니다. 저마다의 격려의 찬사를 진심으로 보냅니다. 때마침 열차의 긴 행렬이 기적을 울리며 저 산허리를 휘돌아 지나갑니다. 험난한 강이 이 지점에서는 크게 휘돌아 가는 도래샘 형태라 잠시 포효를 멈추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인자한 햇살은 온누리에 내리고 불어오는 미풍은 귀밑머리를 흔들고 지나가는데 산매 한쌍이 한가로이 시공을 휘돌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락한 평화의 안식입니다. 강원도 첩첩산중의 동강을 닮았다 합니다. 동강보다는 폭이 넓으나 깊지는 않다고 평하면서 맑은 물 구비구비 휘도는 모양새가 꼭 동강을 찾은 느낌이라 하기에 자연스럽게 고국의 산하에 와있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도 봅니다. 산정상에서 생일을 맞이한 회원을 축하하고 포도주 한잔씩 순배하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말이 별 필요없이 눈길로도 모든 언어를 대신하는 산동무들. 혼자온 미국인 마져도 친구가 되어 우리말로 노래하는 생일축하곡을 그는 영어버젼으로 따라합니다. 구름은 잠시나마 해를 가리주며 우리 일행에 합류하려 합니다. 주변 나무에 앉아있는 새들도 함께 노래불러 줍니다. 자연이 벌려준 생일 축하연입니다.
암반위에 그려진 여러폭의 산수화
내리면 오르고 오르면 또 내려가야 하는 법. 주변의 흔적을 소제하고 하산을 시도합니다. 대화가 단절되었던 등정의 길과는 달리 하산길은 아껴두었던 말들이 쏟아집니다. 취근의 이슈라든지 건강문제라든지 삶의 한조각들을 꺼내 서로의 견해를 이야기하며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갑니다. 배낭뒤에 매달은 쓰레기 봉지가 경쾌한 발걸음에 맞추어 장단처럼 흔들거립니다. 신나는 발걸음입니다. 서녘으로 기울은 햇살을 받은 강물은 다시 수정처럼 맑게 반사하며 그자리에 머무는듯 반짝입니다. 하산을 종료하니 고국같으면 산장같은 선술집이 있어 생맥주 한조끼씩으로 갈증난 목을 축입니다. 당근 이 곡차는 생일을 축하받은 회원이 내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한담으로 심신을 달래고 이어지는 Ohiopyle 공원내 트레일을 덤으로 걷습니다. 평지로 이어지는 물갓길은 암반위에 그려진 여러폭의 산수화였습니다. Ohoipyle 주폭포를 비롯해 레인보우 폭포등등 5개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폭포수의 낙하를 보며 걷는 길은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강주변에서 습한 탓인지 밀림의 야자수처럼 생긴 사철나무들이 우거져 레인포레스트를 걷는 착각이 일 정도였습니다. 삼삼오오 어울려 추억의 한 컷을 문명의 이기에 담아봅니다. 아름다운 자연속에 담겨져 오래토록 살고픈 생각이 간절해집니다만 우리는 언제나처럼 또 떠나야 합니다. 준비해온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여유있는 휴식의 겨를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합니다. 그만큼 먼길을 왔었습니다.
빛바랜 색갈들이 어우러져 가을로 착각하게 하는
올때는 구름안개에 가려졌던 산이며 들판이 청명하게 나타났는데 돌아가는 길은 가을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고산지대의 특징인지 산불이 지나간 지역인지 무슨 병에든 수목들인지는 몰라도 산열매며 사철나무의 빛바랜 색갈들이 어우러져 가을의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하도 기이하여 모두들 차에 내려 한참을 바라보며 기어코 사진으로 증거를 남겨야 한다며 억센 주창자들에 의해 기념사진이 만들어졌습니다. 갑자기 태양의 궤도중 반을 돌아버린 계절의 역행, 묘한 기분으로 그 아름다움을 즐겼습니다. 아직도 세시간을 더 달려야 하는 귀환길. 피로의 기색도 없이 즐거운 담소로 파안대소가 이어집니다. 고마운 하늘은 살구골에 거의 다다를 즈음에 천둥번개를 동반하여 굵은 비를 쏟아내립니다. 깊은 휴식을 취하라는 명령같은 고마운 마음씀씀이였습니다. 어둠이 가볍게 내린 우리동네. 장대비 속에서 우산을 받쳐주며 각자의 차로 이동시켜 부산한 작별인사를 고하며 저마다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 갑니다. 어느듯 차창에는 보슬비가 봄을 재촉하며 조용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1 은둔의 세월이 빚은 이방의 협곡, 왓킨스 글랜.
독립 기념일 연휴. 여름의 정점에서 그 혹독한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바다로 산으로 호수로 도시를 떠나게 하는 절기. 우리는 뉴욕과 펜실바니아의 서부 산간지역으로 보기만 해도 시원할 혹은 몸을 담그면 얼어버려도 좋을 차고도 맑은 물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펜실바니아의 주도 헤리스버그를 지나면서 15번과 이어지는 11번 국도는 인디언들의 생명줄 서스퀴아나 강을 따라 첩첩산중 속으로 들어갑니다. 미니 자유의 여신상도 눈요기로 보여지고 장대한 강물의 흐름이 더위에 지친 도시인의 마음들을 청정하게 씻어줍니다. 지표면 고도를 높여가면서 창문을 내리고 산촌의 티없이 맑은 산소와 오존만으로 구성되었을 것만 같은 바람을 차내로 불러들입니다. 무색 무취의 물맛도 저마다 다 다르듯이 청산을 건너오는 바람도 맑고 고운 향취가 베어있습니다. 길섶마다 풍성하게 피어난 원추리 꽃들이 화사한 웃음 듬뿍 머금은채 긴 여정에 고단한 나그네들을 반가이 맞이하고 또 보내줍니다. 길은 멀어도 명경과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 세속의 시간을 더욱 줄여줍니다. 구름도 지쳐 쉬어가는 고갯마루에서는 우리도 잠시 멈추어 쉬면서 수도 없이 넘고넘는 고갯길들의 마지막 구비에 탄성이 일시에 쏟아지게 하는 목전의 비경. 왓킨스 글랜을 적시고 흘러드는 세네카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뉴욕주 서북부의 지도를 펼치면 마치 열 손가락 펼쳐놓은 형상을 했다고 붙여진 핑거스 레이크 중의 하나입니다.
조물주가 창조하고 자연이 갈무리한 곳.
이 미려한 호수를 바라보며 자그마한 커뮤니티 공원 셸터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기나긴 차 시달림을 달랩니다. 오후는 줄곧 걸어야 하는 일정이기에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왓킨스 글랜. 태초엔 바다였다가 빙하기를 거치면서 융기현상으로 산처럼 되고 그 바위들이 영겁의 세월동안 흐르는 작은 시냇물에 의해 깍이고 침식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형성되었는데 은둔의 세월이 빚은 이방의 협곡입니다. 동부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세인들이 칭송하는 땅. 메인 입구에서 어퍼 입구까지 19개의 크고 작은 폭포를 감상하며 걷는 왕복 4마일의 산행. 왓킨스 글랜의 심장부로 들어서서 협곡 양편으로 둘러싼 골지를 따라 만들어진 림트레일을 따라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적 여유를 갖고 조물주가 창조하고 자연이 갈무리한 명승지를 감상하는 것은 보는 것 가지수 채우기에 바쁜 여행과는 달리 자연의 속살을 보는듯 즐겁기만 합니다.
천상으로 가는 계단
흐르는 물을 거슬로 오르면 하시라도 무너져 내릴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편마암의 단층들이 안그래도 협곡의 기온도 충분히 싸늘한데 더불어 간담마저 서늘하게 만들어 줍니다. 깊게 패인 바윗길은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는데 물이 제법 고여 커다란 용소를 만들어 놓은 곳에는 칠선 계곡의 선녀탕을 연상케 합니다. 태초엔 바다라 생각하니 바다 속을 걷는듯 경이로운 느낌 마저 들면서 촉촉하게 젖은 바위벽들이 간헐적으로 떨구는 물방울이 아득하게 장구한 세월을 느끼게 하며 그 신비함을 더해줍니다. 지나는 비경마다 작은 폭포도 있고 하트 모양으로 워터풀도 만들어져 있어 다양한 볼거리에 걸음이 지치지 않습니다. 낙차폭이 제법 큰 주 폭포 아래 동굴처럼 만들어진 길을 지날때 받는 물세례는 신이 내리는 축복의 하례같아 기분이 매우 좋아집니다. 물기 잔뜩 먹은 암벽에는 세월의 향기를 품은 아름다운 이끼들이 도배를 했고 그 틈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돋보이는 풀나무들이 마침내 꽃을 피워냈습니다. 그런 도전과 불굴의 결실이기에 한갖 미물이지만 더욱 숭고한 모습으로 돋보이게 합니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시원스런 바람을 가르며 오르는 길. 분명코 천상으로 가는 계단일것입니다.
용의 비상을 보듯 화려한 터커넥
이번 여정에서는 터카녹 폭포 트레킹을 하나 더 하기로 했습니다. 동부에서는 나이아가라 다음으로 높고 웅장하다는 물기둥. 한시간 걸린다고 찍히는 GPS의 기록을 45분으로 단축시킵니다. 그만큼 그리움으로 가득한 마음이었겠지요. 일반인들의 접근도 가능하도록 거의 평지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핑거 레이크로 모여드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위에 부딪히며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물줄기는 대양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는 포부로 힘차게 골을 차고 흘러갑니다. 이곳에서도 원추리의 주홍색 물결이 부는 바람에 실려 또 다른 파도로 춤을 춥니다. 오감을 통해 자연을 음미하며 가다보니 별안간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비경 하나. 폭포에 다다랐습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물들이 모여들었는지 그 내림이 너무도 웅대하여 차라리 용의 비상을 보듯 화려하기도 합니다. 봄은 그 엄청난 수량으로 여름은 청량한 풍광으로 가을은 단풍의 빼어난 조화로 겨울은 수려한 빙벽으로 그 명성을 드높인다 합니다.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모두 청정옥수에 발을 담급니다. 순간 그 짜릿하고도 시원한 전율이 몸을 타고 올라 뇌에 까지 이르니 하루의 고단한 여정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집니다. 동향으로 서있는 폭포 위로 해가 기울어 가니 심산유곡에는 어느새 차분한 어둠이 내려 앉습니다.
나를 찾아 길을 나서는 여행
하루를 마감하며 와이너리를 찾았습니다. 미 북동부 와인의 본산으로 발돋움하는 핑거 레이크 와인 단지중 배산임수의 명당을 차지한 고즈넉한 와이너리 레이크우드에 들어 호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시음장에 모두 앉았습니다. 한잔이 감질날 정도의 인색한 양이었지만 그것도 열잔을 넘게 마시니 시장기가 도는 탓에 기분좋은 취기가 오릅니다. 석양은 등뒤에서 화려하게 스러지고 호수위로 부는 바람은 잔물결들을 은빛 편린으로만들어 아련한 추억에 빠지게 합니다. 함께 오지 못한 회원들. 함께 왔어야 할 사람. 이 아름다운 순간을 같이하지 못한 진한 아쉬움. 여러 감정이 일었다 사라집니다. 서로 사랑하고 갈등하고 때론 미워하고 지냈던 순간순간들이 지금만큼은 모두 버릴수 없는 소중한 자산으로 기억속에 쌓여집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이런 자연이 주는 위안 속에서 마음의 정화를 얻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세상으로 성숙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나를 찾아 길을 나서는 여행을 합니다.
3. 웨스트 버지니아, 그 꽃의 향연
DOLLY SODS 들꽃들의 향연에 초대를 받아
미국 수많은 주들 중에 가장 가난한 주. 그러나 인공미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태초의 원시 그대로를 간직하고 보존하고자 노력해온 웨스트버지니아. 주토의 8,90 퍼센트를 온통 산이 뒤덮고 있어 빼어난 자연 경관을 간직하며 울창한 수목과 헤아릴 수 없는 폭포수들, 수려한 바위들, 그리고 그 사이로 이어진 아름다운 산행로들이 즐비해 산사람들에게는 너무도 그리운 정인처럼 만나고픈 지역입니다. 고즈넉한 국유림과 국립 유원지를 끼고 있는 돌리소드에는 늦게 꽃을 피워내는 산철쭉(Wild Azaleas)들이 조만간 다가올 싱그러운 초여름 날에 온산을 불태워 버릴 양으로 가지마다 꽃망울을 꿈으로 터질 듯 보듬고 있었습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최고봉으로 수천 년을 버티어온 고목들이 영생의 삶을 살고 있는 스프러스 놉. 이곳에는 산을 지키는 수호신인 숲의 정령이 서려있는 듯하여 인적이 드문 산길에는 태고의 자연이 그대로 이어져와 원시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고 자연의 질서를 따라 제 모습을 지켜온 고대 원시림 지역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산이 마음속의 고향으로 남아 항구하기를
어김없이 찾아온 봄. 산촌에는 봄이 두 번 찾아온답니다. 일찌감치 산 아래 동네에 찾아온 봄은 산을 따라 올라가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고 우리는 그 두 번째의 봄을 쫓아 정상으로 향합니다. 오랜만에 흙먼지 폴폴 나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고산 평원으로 이름난 돌리소드로 향하는데 오르는 좁은 갓길에는 싱그러운 햇살에 봄꽃은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름부터 수줍음으로 조심스레 피어나는 보라색의 각시붓꽃(Iris)과 함께 좀 민들레(Daisy), 자주 달개비(spiderwort), 부지깽이 풀(dame’s violet) 등 얼굴이 조그만 들꽃들이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부끄러운 얼굴로 세상에 디밉니다. 산은 계절이 바뀜에 따라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데 여름으로 가는 길목의 명산은 풋풋하고 생기가 넘쳐흐릅니다. 물기가 항상 머무는 산길, 물푸레 나무 같은 관목들이 언제나 그 푸름을 지니고 청정한수가 계곡을 따라 흐르는 South Prong Trail을 택해서 걷습니다.
습한 곳에는 나무 널빤지로 길게 다리처럼 연결해두어 산뜻한 산행이 되도록 정성을 들인 흔적이 많았는데 우리 일행은 주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합니다. 고산 습지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 이끼풀이 말라서 바람에 날리다 나무 가지마다에 매달려 신비롭고 자욱한 안개꽃처럼 번져있습니다. 영겁의 세월동안 제자리를 지켜온 거대 바위에는 창연한 석이버섯이며 이끼류들이 저마다의 영역을 지키며 공생 군락하고 살아갑니다. 사계절 중 가장 맑은 물을 솟아내는 개울에는 어린 치어들이 평화롭게 유영하며 그들 나름의 산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숲길이 끝나니 바위 길이 걸음을 더디게 하는데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정상을 향한 길임을 인지하게 합니다. 우리는 사계절 내내 산을 찾으며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오르는 산행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되는데 우리가 얻는 생의 그 자신감과 그리고 그 후의 즐거움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산을 오르다보면 낮은 산 높은 산 할 것 없이 오르막길은 언제나 힘이 들지만 그 고행의 길을 주저하지 않고 가다 지칠 만큼 지쳐서 한 자락 큰 숨을 내쉴 때 산은 조심스레 숨겨놓은 비경을 꺼내놓습니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쉬어가라 함입니다. 아직은 아쉬워 버리지 못했던 세속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마저도 쉬게 하라 이릅니다. 바위로 이어지는 정상 길, 주변이 환해지는 것은 정상이 가까워진다는 뜻. 한걸음 옮길 때마다 가픈 숨을 쉬게 하면서도 보이는 만큼 수이 손에 닿지 않는 것이 또한 정상입니다. 시야가 점점 밝아지고 하늘이 가까워집니다. 마침내 정상에 선 이들에게만 산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산과 하늘, 그사이를 메우는 바람이 우리의 가슴 속을 헤집고 들어서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욕심도 근심도 없이 모두 사라집니다. 서로 마주보는 우리들은 산이 여기서 영원히 마음속의 고향으로 남아 항구하기를 소망합니다.
얼마나 사무친 그리움이었기에
산을 떠나 또 다른 산으로 가는 길. 산이 또 다른 산과 만날 때 길은 어느새 하나로 이어집니다. 완연한 봄의 기운. 어느새 봄은 해발 1천 5백의 스프러스 놉에도 올라 이십여 마일을 차로 오르는 산길엔 단풍나무(Maple)며 층층나무(Dogwood), 미루나무(poplar)등 키 큰 나무들이 연보라며 하얀 꽃들을 피워내 묘하도록 아름다운 조화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정상 초입에 군서하는 박태기나무(redbud) 가지에는 설중매보다 더 짙은 색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서둘러 행장을 꾸려 산정 평원이 아름다운 허클베리 플레인 트레일을 걷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항상 물기가 가득한지 불가사의한 의구심으로 걷는데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성상의 이끼들이 미답의 신비를 품고 고산식물들과 함께 자생하고 있어 소중하고도 거대한 자연 식물원이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온산을 가득 메운 전나무(Spruce)들이 드높은 기상을 보이며 시원스레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자연 그대로 순환을 거듭해온 증표로 나뒹굴고 있는 고사목들이 즐비합니다. 지구가 생성된 이래 아무도 밟지 않았을 것 같은 길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자 산행로에서 잠시 벗어나 두텁지만 부드럽기 그지없는 푸른 이끼위에 발 도장을 찍어봅니다. 천혜의 자연과 그 자연을 보존하려는 아름다운 사람들. 그래서 오늘 오르는 스프러스 놉의 봄 산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도 명산이 있거늘 언제나 우쭐한 마음으로 머나먼 타주로 하늘 다른 타국으로 전전했던 지난날이 조금은 무색해집니다. 항상 머나먼 곳을 바라다보며 뭔가를 갈구해온 지난날들. 어쩌면 그 소중한 것들이 가장 내 가까운 곳에 있으며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주어진 삶속에서 자신의 몫을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산. 산은 이 시간 우리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집니다. 이렇게 대단한 대자연 앞에 서면 지난날의 자만과 교만이 부끄러워지며 숙연함으로 머릴 조아려 겸허해 지게 됩니다. 유난히 거칠게 지나가는 정상의 바람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숨소리처럼 여겨집니다. 누군가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탑위로 나도 우리 모두의 안녕과 장수와 건강의 바람을 채곡채곡 올려놓습니다. 얼마나 사무친 그리움으로 두 개의 몸이 하나의 나무가 되었을까 싶은 연리목의 그림자가 어느새 길게 늘어지는 시간, 서산의 보랏빛 낙조가 그윽하게 온 누리에 드리웁니다.
생의 한 즐거움으로 침전되는 순간
숙소인 가나안 밸리 산장지역에 이르러 벽난로에 불을 지피니 조용한 저녁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과를 끝내고 난 뒤 내리는 비는 그렇게 평화롭고 안락할 수가 없습니다. 유리창을 두드리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짙은 안개 속에 저물어 가는 하루를 되돌아보며 아무도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내리는 비만을 주시합니다. 바쁜 일정을 놓아버린 허전함도 삶의 충만한 포만감도 모두 생의 한 즐거움으로 침전되는 순간입니다. 분주한 식사준비와 끊이지 않는 담소 그리고 주고받는 한잔의 정들이 쌓여 가면서 산장에서의 밤은 그렇게 나그네의 시심처럼 익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밤이면 싸늘한 기온이 감도는 산촌의 한데. 잘 데워진 자쿠지 욕조에 들어 심신의 피로를 녹이고 있는데 머리며 어께에 내리는 차가운 비는 상극의 대비를 느끼게 하면서 한겨울에 즐기던 노천온천욕을 연상케 합니다. 깊은 밤, 핏빛 보다 더 진한 와인잔 속으로 빗물이 튀고 동료들과의 잔잔한 얘기는 긴 여운의 웃음으로 남으며 산장에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련하게 가슴에 새겨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