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체질 (하)- 병보다 사람을 연구하는 의학. 원래 의학은 병을 연구하기 전에 먼저 사람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엄밀히 말해 전세계 의학사를 살펴보면 ‘병이 아닌 사람을 연구하는 의학’이 사상의학만 있던 것은 아니다. 서 양의학의 시조라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도 근본적으로 체질론이라 할수 있는 ‘체액론’을 주장했고,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베다에서는 3체질론, 정통 중의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경전인 ‘황제내경’에서도 각각 오행론에 근거한 ‘오체질론’과 음양론에 근거한 ‘5태인론’을 주장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오래된 의학들은 하나같이 ‘병’ 그 자체보다는 ‘사람’에 중점을 두고 시작한 연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다른 문화권에서 기원한 다양한 체질론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종류대로(?) 분류하고 진단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 이론의 확립까지만 연구가 진행되었을 뿐, 의학이란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치료방법’을 완성시키지 못한 한계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 다양한 체질이론들의 대부분은 후대에 이르러 좀 더 실질적인 효용을 지닌 ‘병’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이론들로 대체되면서 ‘의학’이 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사상의학은 아직도 실제 임상에서 사용되고 연구되고 있는 유일한 ‘체질의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독창적인 사상의학적인 치료법의 핵심은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불균형을 해소해 주는데 있으며, 이러한 체질적인 불균형을 해소해 주는 치료를 통해 일견에는 체질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질병들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상의학적인 치료는 기존의 치병의학에 익숙해진 대중의 눈에는 도저히 ‘이해불가’인 경우가 많다.

굳이 사상체질이론의 주장들을 여러가지 학문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대부분은 경험적으로 자신의 몸에서 쉽게 상하는 부분과 왠만해서는 잘 상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각 개인이 쉽게 걸리는 만성병들이라면 태생적으로 약하게 타고난 부분을 채워주는 사상의학적인 치료가 기존의 의학보다 큰 효과를 거둔다는 점에 대부분 쉽게 수긍한다.

하지만 어떻게 발목염좌와 같이 ‘체질’과는 전혀 상관없이 발생하는(누구나 체질과는 상관없이 넘어질 수 있다) 질환들에도 ‘체질치료’가 효과가 발휘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끔씩 이러한 질문을 환자들 뿐 아니라 동료 한의사들로부터(중의학을 전공한) 종종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한 대답을 결론부터 말하면 ‘당연하다’이다. 오히려 ‘체질’과는 상관없는 병증에도 ‘체질치료’가  더욱 신속하고 강한 치료효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임상속에서 본인은 매일 같이 수시로 경험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뒤집을 때 비로소 이해가 될 수 있다.

우선 모든 사람이 체질적인 불균형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나지만, 이러한 불균형이 젊고 건강하여 지니고 있는 기혈이 충만할때는 잘 나타나질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럴 때는 오히려 왠만한 부상이나 질환은 수일내로 거뜬히 회복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거나 여러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이 선천적인 불균형이 심화되면, 평소에는 잘 티가 나지 않던 부분들이 노화와 함께 더욱 약해지며 이곳을 통해 병이 쉽게 침범하게 된다. 이렇게 심화된 불균형이 ‘병’으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은 상태라 해도, 잘못된 생활습관과 노화의 영향 아래 우리몸은 여전히 불균형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체질 의학에서는 우리 몸이 일단 이러한 상태가 되어버리면 원래 갖추고 있어야 하는 ‘자생력’도 약화되어, 예전과는 달리 간단한 감기나 발목염좌 같은 단순한 부상들도 더디게 낫게 된다고 본다. 즉, 환자가 불편을 호소하는 각종 질환과 대부분의 부상들은 원래대로라면 충분히 몸이 스스로 고칠 수 있었을 증상들이므로, 굳이 ‘병’에 집중하기보다 우리 몸의 자생력을 끌어올리는 조치만 해주면 우리 몸이 알아서 수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간단한 발목 염좌의 경우 건강한10대는 길어야 일주일이면 회복되지만, 50대에는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최소2-3주의 시간이 소모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50대가 발목을 접질렀을때 아무리 최선의 치료를 하여도,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은 10대보다 더딘 회복을 보이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목격한다. 만약 일시적으로라도 50대가 지닌 몸의 불균형을 10대 정도의 수준으로만 개선시켜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사실 이러한 치료가 다른 어떤 대증요법보다도 가장 효율적인 치료법이 되지 않을까? 아직은 의사가 외부로부터 우리 몸에 간섭하여 병을 치료하는 메커니즘의 수준보다, 우리 몸이 이미 지니고 있는 자생력이 병을 치료하는 메카니즘이 더 효율이 높은 경우가 많다. 바로 이점이 바로 치료의 원칙을 세우는데 있어 병이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대답을 던져주는 ‘사상체질의학’의 존재 의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