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로 손만 대도, 아니 잠시 고개만 흔들어도 쑥쑥 빠져나오는 머리카락, 이불자락에도, 베갯잇에도, 그리고 사방에 그녀의 검은 머리털이 흩어져 있었다. “항암 치료 때문에 어차피 다 빠져 버릴 머리, 다 깎아버렸으면 좋겠는데 도와주실 분 없을까요?”라고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약함이 가득하게 배어 있었다. “글쎄요. 한번 찾아볼게요.”라고 말은 했지만, 부탁할 만한 사람이 뿅! 하고 떠오르지 않는다. 다들 먹고 살기 바빠 허덕이는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그냥 박박 밀어야 한다면 무엇으로 밀어야 하나, 면도칼 정도면 안 될까? 라는 엉뚱한 생각에 잠긴다. 그렇다고 내가 면도칼 하나 들고 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만일 면도칼을 내밀며 “제가 머리 박박 밀어드리려고 왔습니다.”라고 한다면 그녀가 아마 기절해 버릴지도 모른다.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고민 중에 떠오르는 어느 목사님께 부탁하자 “우리 안사람에게 물어볼게요.”라는 반가운 대답이다. 그리고 흔쾌히 시간을 내어 찾은 그녀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이제 겨우 오십 초반의 그녀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지만, 그녀의 가냘픈 모습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허약하고 창백한 모습만 있을 뿐이다. “머리를 어떻게 자를까요?”라고 묻자 “그냥 박박 다 밀어주세요.”라며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머리 자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녀, 목까지 내려온 머리를 내밀며 “이제 제 소원이 정말 이루어졌네요.”라며 생글거리며 웃던 그녀가 정말 기뻐할 줄 알았는데 자신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본 것일까? 머리를 미는 동안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이 아프게 가슴을 저미게 한다. 아직 멋을 알 그 나이에 암이라는 무서운 병마와 싸워야 하는 그녀의 머리가 삭발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꾸 웃으며 “그래도 머리를 자르니 시원하네요.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맨머리를 만지며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인생의 허무함으로 시련이라는 무서운 짐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며 마음을 다독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가 “주님께서 보답하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주님께 보답 받을 생각 전혀 없으니 자매님이 빨리 나아서 나에게 보답하세요.”라고 하자 “네 그렇게 할게요.”라고 말하며 웃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암은 이미 퍼질 대로 퍼져 항암치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환자가 겪어야 할 마음의 고통이 아닐까? 수명이 다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면 덜 슬프겠지만,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병마 때문에 고통받아야 하는 것은 슬픔보다 더 지독한 고독일 것이다. “아프다고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서 자꾸 걸으세요. 그리고 주님과 대화 많이 하세요. 그러면 주님께서 낫게 해 주실 거예요.”라고 위로하고 있지만, 그녀의 가녀린 눈가에 맺힌 눈물이 아프게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직 더 많은 날을 깔깔대며 웃고 살아야 할 그녀가 병상에 누워 갇혀 슬픈 눈물을 닦아 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에 묻혀 있는 슬픔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다. 그녀의 입가에 머문 작은 미소는 아름다움이었지만, 그 눈가에 맺힌 눈물은 아픔과 절망 그리고 시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