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메인 주의 작은 항구에서 사장이 지배인을 불렀다. 그리고 지배인에게 특별한 주문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암소 50마리를 수송해달라고 하는군” 지배인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 합니다. 우리는 물건을 운송하는 회사입니다. 살아있는 암소는 운송이 불가능합니다.” 그러자 사장은 “벌써 예스로 대답했네. 그러니 방법을 간구해 보세” 지배인은 부정적이었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이기에 해결책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돌아서는 지배인에게 사장은 “참, 그 암소들이 임신한 암소들이라고 말했었나?” 결국 그 작은 회사는 임신한 암소들의 운송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는 미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운송회사중의 하나로 성장했다. 후에 지배인이 사장에게 물었다. “왜, 힘들지 알면서도 그때 손님에게 “예스”를 했습니까?” 그러자 사장은 “왜냐하면, 모든 거래는 “예스”에서 시작하니까.”
셀러중에 정부 감사관 출신이 있었다. 그 셀러는 평생 잘못된 것을 찾아서 보고하는 업무를 관장해온 관계로, 모든 주택거래를 의심으로 바라보았다. 바이어가 카운터 오퍼를 요구하면, 혹시 자신의 에이전트가 바이어 에이전트와 짜고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것이 아닌가를 의심했다. 자신의 에이전트가 연락이 즉시 되지 않으면, 저쪽과 협상 중이 아닌가를 의심했다. 그래서 셀러는 “노”를 자신의 방어책으로 썼다. 바이어의 어떤 협조요청도 “노”로 일관했다. 결국 바이어가 지쳐서 계약파기를 결정하려 하였다. 이때도 셀러는 “그럴리가 없어요. 틀림없이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려고 쓰는 수작일 겁니다.” 셀러 자신이 고용한 에이전트 마저 의심하는 상황에서 어떤 조언도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바이어가 셀러에게 계약파기를 통보해왔다. 그제서야 셀러는 사실을 직감했다. 바이어의 요구가 수작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것이었음을.
협상을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는 게임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 아니 지지않기 위해서 협상하는 것은 당사자들을 참으로 불행하게 한다. 그래서 주택매매 기간중에 스트레스와 불쾌감을 떨칠수가 없는 것이다. 혹시 ‘내가 지는 것이 아닌가?’ 해서.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 ‘노’를 대답하려 한다. 그러나 사실상 협상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행위이다. 나의 ‘예스’가 동시에 상대의 ‘예스’이기도 한 해결책을 간구하는 것이 협상이다.
‘예스’로 대답한 의뢰는 항상 협상을 시작한다. 그러나 ‘노’로 답한 의뢰는 협상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네, 물론 입니다’로 하루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