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 남성 L씨는 최근 몇 개월사이에 급격히 악화된 허리와 다리의 통증을 주소로 필자를 찾은 환자이다. 환자가 분명하게 기억할만한 신체적 손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허리가 아프더니 이제 다리까지 통증이 심해졌다고 했다. 다리는 엉덩이 부분에서 시작해서 종아리를 거쳐 발등까지 통증이 있었는데 그냥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고 저리기 까지해서 매우 심한 불편감이 있다고 하였다. 마침 주치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처방한 요추 자기공명영상 촬영(MRI)결과를 가져오셨기에 사진을 살펴보니 5번째 요추(허리뼈)와 첫번째 천추(꼬리뼈) 사이의 디스크가 왼쪽으로 삐져나오면서 다리로 가는 5번 요추신경을 누르고 있는 전형적인 디스크 탈출증의 소견을 보이고 있었다. L씨에게 현재의 상태를 설명해드린 후에 동의를 얻어서 신경 주위 조직에 항염 작용을 가진 부신피질호르몬 주사하는 경막외 주사를 시행한 결과 2주 후에는 증상의 거의 완벽한 소실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다음의 이야기이다. L씨는 자신을 고쳐주어서 고맙다며 주의에 자신과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선전을 많이 해주겠다며 가셨다.
그러던 일주일 후 67세의 남성 P씨가 오셨다. L씨의가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하시며 자신도 L씨와 똑같은 병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찰을 해보니 이번에는 디스크 탈출증이 아니고 요추부분에 생긴 척추 관절염으로 엉덩이와 허벅지 뒷면으로 통증이 전이되는 경우였다. 그래서 성심성의껏 치료해드렸다. 그런데 일주일후 또 다른 여성환자 L씨가 오셨고 이 분도 L씨의 소개로 오셨는데, 역시 엉덩이와 다리가 아프시다는 것이었다. 진찰해보니 이번에는 고관절에 관절염이 심한 경우라서 역시 치료를 해드렸다.
이 세 분은 모두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다리가 아팠기 때문에 다 똑같은 병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셨는데 다들 다른 병이었고 치료도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독자들도 아셨겠지만 거의 같은 위치에 거의 같은 통증이 있어도 진단이 천차만별이고 치료법도 다 다르다. 하지만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없는 환자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 허리와 다리 통증일 뿐이다.
필자가 작년에 통증의학 세미나에서 들었던 한 강의가 기억이 난다. 그 의대교수가 허리에 통증을 일으키는 병 중에 어떤 병이 엉덩이와 다리에 통증을 일으키지 않는지 찾으려고 했더니 결국 찾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허리 통증과 다리 통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증상은 같아도 진단은 다르다. 이게 통증의학을 하는 묘미인 것 같다.
그나저나 필자에게 수많은 친구와 지인을 보내주신 L씨와 같은 환자들에게 이자리를 빌어서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