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EPIC. Kesugi Ridge Trail (1)

오랜만에 하늘을 보았습니다. 디날리를 떠나 Parks Hwy를 타고 남하하다가 Byers 호수로 빠져 캠핑장 사이트 하나 잡고 이르게 저녁밥을 지었습니다. 식후 소화제 같은 담배 한개비 맛있게 피우는데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생연기를 따라가다가 마른 하늘을 쳐다 보게 되었습니다. 멀리 동편 하늘에 반짝이는 어린 별 하나. 초저녁 하늘에서 달에 이어 두번째로 밝게 빛나는 샛별 금성(Venus)입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이 별이 가장 먼저 떠 반짝이면 양들을 몰고 낙타의 나무 종소리를 음률로 들으며 등대처럼 길잡이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 그래서 ‘양을 감추는 별’이라고 부른답니다. 유목민 출신으로 글로벌 모델이 되어 활약하는 와리스 디리의 여성 할례를 고발하는 책에 묘사된 표현입니다. 낯선 길위에 서 있을 때면 혼자이던 무리를 지어있던 저 별이 떠있을 시간이 오면 항상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젖어듭니다.

물론 혼자일 때는 더 심한게 당연하지만요. 하루의 고단한 여정 뒤에 오는 허탈감이랄까 시간이 지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제법 센티해지는 것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한번씩 이렇게 사념에 젖어 삶의 근원적 문제와 방향을 정리해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무수한 별들이 찬란하고도 영롱하게 빛을 발하다 한번씩 별똥별들이 저 넓고 깊은 바이어스 호수에 떨어지는 아름다운 밤이 깊어갑니다.

Kesugi Ridge 트레일. “Epic” 이 트레일을 두고 미국 등산 칼럼리스트가 표현한 헤드라인 입니다. 대서사시. 거의 알파인 존인 능선을 따라 32여 킬로미터를 걸으며 장대하고도 웅장한 디날리 산군의 서쪽 사면을 보면서 걷는데 감히 천국을 엿보았다고 표현합니다. 이 릿지 트레일을 밟기 위해서는 네곳의 산행 시작점이 있습니다. 알래스카에서 트레킹 시작점을 찾는데는 대륙을 종횡단 하는 길마다 마일 포인트를 세워두었으므로 찾기가 참 쉽습니다.

Parks Highway 라는 디날리와 앵커리지를 이은 길 138마일 지점에 있는 Byers 호수를 낀 Troublesome Creek 캠핑장과 164마일 지점에 있는 Little Coal Creek Trail 사이에 있는데 모두 4~7km를 오르면 케수기 릿지를 만나게 되는 ‘ㄷ’자 형태의 산행로입니다. 58km의 긴 길이라 하룻밤 야영을 각오한다면 해볼만한 코스입니다만 당일 산행으로 추천하는 루트는 Troublesome Creek 캠핑장에서 시작하게 되면 늪지대와 물의 범람으 로 돌다리 유실등으로 젖을 수 있고 곰의 출현이 잦다고 하니 그야말로 트라블이 많아 Little Coal Creek Trail로 오르거나 156 마일 지점에서 시작하는 Ermine Hill Trail을 타고 올라서 릿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릿지에 이르기 까지는 5km 정도 거리를 500미터 고도를 오르면 되고 그 후 릿지는 역량과 사정에 맞춰 진행하면 됩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산악기후와 낙상에 주의해야 하는 돌길 그리고 모든 종류의 야생동물의 공격도 염려해야하며 자신의 한계내에서 걸어야 하는 길. 그러나 그길은 붉고도 거대한 디날리 산군을 가까운 곳에서 조망하는 행운이 따르는 곳이랍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