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연구하지 않는 의학이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병에 걸리면 우리는 보통 ‘이 병에 왜 걸렸을까?’라던지, 또는 ‘이 병은 어떻게 고쳐야 할까?’ 와도 같은 병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의학이란 병을 진단하고 고치는 학문’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많은 의학 체계들이 질병의 치료를 위해 ‘질병’ 그 자체 보다는 ‘병과 관련 있는 다른 무엇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의학은 어떤 특정한 ‘질병’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나 그 질병으로 인해 나타나는 불편함과 같은 ‘질병 자체에 대한 정보’들 보다는, 어떠한 질병에 걸려 있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진단과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 있는 학문 체계이다. 바로 여기에 동일한 질병에 대해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그 원인에 대해 서로 전혀 다른 진단을 내리고, 전혀 다른 치료법을 택하는 이유가 있다.
감기는 바이러스로 인해 생길까? 약해진 내 몸의 면역력으로 인해 생길까?
‘감기’의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일단 현대의학에서는 ‘감기’라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특정한 바이러스’에 그 진단과 치료의 초점을 맞춘다. 지금 앓고 있는 감기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색출하기 위한 진단을 하고, 그 색출된 바이러스에 효과적인 항생제를 찾아 투여하는 식으로 치료가 이어지는 것이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한의학에서는 ‘감기’라는 질병에 걸리기 쉬운 ‘특정한 몸 상태(약화된 면역력, 혹은 폐나 신장 기능)’에 그 초점을 맞추는데, 어떤 이유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약해져 버렸는지를 우선 진단한 이후(예를 들어 추위 같은) 몸의 면역력을 약화시킨 그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치료를 진행한다.
오십견을 현대의학에서는 어깨만의 문제로 보지만….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에는 일반적으로 ‘오십견’이라 불리는 어깨통증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어느날 특별한 외상이 없이 갑자기 어깨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지면서 통증과 함께 움직임에 제한이 생길 경우, 현대의학에서는 이를 증상이 나타나는 양상과 부위에 초점을 맞춰 어깨가 굳었다는 의미의 ‘동결견’, 혹은 관절에 염증이 생겨 움직임이 제한되었다는 의미의 ‘유착성관절낭염’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그 후, 이 굳어버린 어깨근육을 풀어주기 위한 물리치료나 염증을 제거하기 위한 스테로이드 주사를 치료의 수단으로 선택하는데, 이처럼 현대의학은 질병의 치료를 위해 철처히 ‘질병’의 증상과 발생 부위와 같은 질병 그 자체의 정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의학은 오십견의 원인을 허약해진 몸의 순환장애에서 찾는다.
반면 한의학의 경우 동일한 증상의 질병에 대해 일반적으로 ‘오십견’이라는 진단명을 사용하는데, 이는 이러한 증상들이 몸의 경맥과 혈맥의 흐름에 이상이 생겨 각종 사기(풍, 한, 습, 담)가 우리 몸에 침범하여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이러한 변화가 오십대라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테니스 엘보우’라고도 불리는 ‘사십주’라는 질병이 있다) 그래서 오십견에 대한 한의학적인 치료는 직접적은 어깨에 대한 치료 보다는, 침범한 습담과 어혈을 제거하면서 몸 전체를 강화시키므로 경맥과 혈액의 흐름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현대의학에서는 똑같은 ‘동결견(frozen shoulder)’이라는 진단을 받은 두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의학적인 관점에서는 ‘풍,한’이나 ‘습,담’의 침범을 받은 환자와 폐경이나 과로 같은 요인으로 인해 기혈순환 자체에 문제가 생긴 전혀 다른 부류의 환자로 나누어진다. 이는 한의학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학이 아니라,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고 병에 걸리기 쉬운 몸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의학’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적인 치료법은 한의학적인 진단법을 따라야만 하는 이유
그런데 만약 어떤 한의사가 ‘오십견’으로 내원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한의학적인 진단법을 따르지 않고, 현대 의학처럼 증상이 나타나는 양상과 위치에 초점을 맞춘 진단을 통해 염증을 제거하기 위한 한약재를 쓴 처방과 굳은 어깨 근육을 직접적으로 풀기 위한 침법만을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물론 현재 어깨 근육이 굳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어깨 관절에 염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 그런 접근법이 전혀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현대의학적인 진료에 따라 현대의학적인 치료법을 사용한 경우보다도, 한의학적 진단법에 근거해 한의학적인 치료법만을 사용한 경우보다도 그 치료 효율이 크게 떨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최대한 빨리 질병을 고치고 싶다면 병을 고치는데 특화된 치료법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고, 질병에 잘 걸리는 몸을 개선하고 싶다면 당연히 그것에 특화된 치료법을 선택해야 한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아무곳이나 가장 가까운 병원이나 한의원의 문을 두들기기 전에,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당장의 병증을 개선하는 것인지, 자꾸만 같은 병증으로 고생하는 신체조건을 개선하는 것인지 한번쯤은 먼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