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저울을 머리속에 그려보자. 어느 쪽의 무게접시에도 아무것이 올려져 있지 않은 양팔저울은 당연히 균형이 잡혀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건강’한 상태는 일반적으로 이런 상태를 의미한다. 어떤 일도 생기지 않고, 어떤 자극도 없어 어느 쪽으로도 균형이 기울어지지 않은 양팔저울처럼, 어떤 사고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기 전의 몸 상태를 우리는 보통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녹록치 않다. 살다보면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기도 하고, 공부를 하다 두통이 생기기도 하며, 남편과 자식으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기도 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들의 인생인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우리는 타인과 부대끼며 인생을 살아가는 한 늘 균형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일단, 수많은 종교에서는 나쁜 것들을 내 삶에서 덜어내고 버림으로 균형의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석가는 마음과 욕심을 비우라 했고, 예수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이 건강한 정신과 마음을 위해 스님, 비구니, 신부, 수녀, 도사와 같은 삶을 선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종교와 세속의 갈등이 시작된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이혼을 하고 아이를 버린다거나, 내 허리와 손목의 건강을 위해 집안일을 온전하게 ‘내려놓을’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이나 의학은 뭐라할까? 결론부터 말해 현대의학 또한 종교와 별반 다르지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단지 정신적인 요소보다 물질적인 요소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당뇨 환자의 식단에서 달콤한 음식을 제하고, 고혈압 환자의 식단에서는 짠 음식을 제한다. 컴퓨터를 많이 사용해 손목이 아프면 컴퓨터를 쓰지 말라 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주부습진이 생기면 물을 멀리하라 한다… 맞는 말인 줄은 알지만 의사선생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석가나 예수의 가르침만큼이나 실천하기 어렵다. 이러니 많은 사람들이 의사선생님들의 가르침을 그저 ‘듣기만 좋은 탁상공론’ 처럼 취급해 버리고 노력을 포기해 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이 목도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자.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쁜 것을 제거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깨진 ‘균형’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아닌가? 자꾸 균형을 깨뜨려 버린 ‘저 나쁜 것들’(남편, 친구, 가난, 양념치킨, 집안 일 같은..)을 제거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만 꽂혀버리니, 우리는 그보다 더 중요한 원래 목적이었던 ‘균형’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니 암을 제거하는 과정에 오히려 목숨을 잃어버리는 극단적인 상황들을 우리네 주변에서 일상처럼 일어나고 우리는 그러한 현상을 의아해 하지 않는다. 저울의 접시에 이미 꽉 늘어 붙는 나쁜 것들을 제거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저울의 균형은 이미 내 마음속에서 온데간데 없어진 것이다.
물론 제거할 수 있는 병의 요인, 스트레스의 요인은 당연히 하루라도 빨리 제거해야 한다. 다만 그것들을 제거하려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오히려 더 큰 불균형을 스스로 초래하거나, 반대로 아예 그러한 노력들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다시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균형 그 자체이다. 이 쪽 저울에 올라간 것들 때문에 균형이 깨졌다면, 그런데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녹록치 않다면 그저 그 반대편에 비슷한 것을 하나 더 올려놓으면 될 뿐이다. 그러면 균형은 생각보다 쉽게 돌아오고 우리는 다시 건강해진다. 보일러가 망가져 너무 추우면 일단은 옷을 더 껴입으면 되고, 너무 많이 먹었다면 좀 더 뛰면 된다. 컴퓨터를 사용하다 손목과 목이 아프면 스트레칭을 수시로 해주면 될 것이고, 남편이 짜증나게 하면 음악을 듣고 쇼핑을 하자. 혈압이 높으면 혈압을 낮춰주는 음식이나 한약을 먹으면 되고, 당뇨가 있으면 혈당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해주면 된다.
건강해지기 위해 반드시 병의 원인을 제거할 필요는 없다. 덜어내든 더하든 균형만 회복하면 우리의 삶은 다시 건강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