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시여!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버렸을까?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빈방에 홀로 누워 숨을 몰아쉬는 노인의 야윈 손엔 힘이 없었다. 약품 냄새 진동하는 병원 한쪽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까? 말을 할 수 없어 글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노인, 노인을 위임해 줄 사람 하나 없어 그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은 나를 기억해 낸 것이다.

 

 

노인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정녕 나 하나였을까? 선뜻 노인을 위임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몇 장의 위임장에 서명하는 내 손마저 떨리는 것은 노인의 외로움이 내 속에서 꿈틀거리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든 것은 당신 손에 맡깁니다.”라고 말하는 수 간호사의 말이 끝났을 때 어딘가부터 전해지는 허전한 마음을 어찌 달랠 수 있을까.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눈을 껌벅이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것이 잘 될 겁니다.”라고 말하자 그가 내 손을 꼭 잡는다. 아무도 없이 먼 길을 홀로 살아온 지나온 세월은 그에게 고독이었고 외로움이었다. 이제 그나마 그렇게 홀로 살다 그렇게 가기를 원했건만, 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시달려야 하는 고통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병으로 받는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에 홀로 누워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노인,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하소연이라도 해 보련만, 그럴 수 없는 지금의 그의 처지가 안타깝게 마음을 짓누른다.
병원에서 “이 분이 잠잘 때 어떻게 자나요? 편하게 자나요? 아니면 코를 골던가요? 아니면 기침을 하던가요?”라고 묻는다. “모르는데요. 저는 이분의 아내가 아니라서 같이 잠을 잔 적이 없는데요.”라고 하자 그녀가 “아! 미안해요.”라며 깔깔 웃는다. 아내라도 있다면 저렇게 홀로 고독하게 병실에서 밤을 보내지는 않을 테지.

 

 

생각해 보면 삶이란 그다지 별스러운 것도 아니건만, 길어야 백 년이나 살려나, 그 세월을 우리는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 어느 날 손 놓고 저 먼 세상으로 떠나는 그 순간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가끔 병으로 고통받으며 병실에 누워있는 그들을 볼 때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 우리도 어차피 그렇게 갈 인생이건만, 세상에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애쓰며 사는 우리를 본다. 좋은 집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명품들이 과연 어떤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노인이 내뱉는 가래가 가슴으로 흘러내린다. 기침할 때마다 손을 부여잡는 노인의 얼굴은 백지장같이 하얗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노인의 얼굴에 희망이 사라진다. “고통이 사라지면 행복이 오는 것 같이 지금은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수술하면 금방 나아집니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라고 위로해 보지만, 그는 그 말 한마디조차 듣기 힘들어한다.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없다.
길거리엔 노란 개나리가 하늘거리는 데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온 천지를 가려버린다. 저 눈도 노인의 아픔을 그렇게 가려주면 얼마나 좋으리. 그래서 눈이 녹듯이 그의 아픔과 고통도 모두 다 녹아 없어져 버린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련만, 눈은 녹아 사라져 버렸는데 노인의 아픔은 그저 남아 있구나, “아픔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희망을 품어주고 싶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우리가 있잖아요. 우리가 함께 할게요.”라고 말하는 나의 손을 잡는 그의 아픔이 아파 내가 아팠고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 슬펐다.
하늘이시여! 더 큰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먼저 살려주시고 남아있는 작은 사랑 한 조각 노인에게 나누어 주소서, 그리하여 노인의 아픔을 멈추게 하소서.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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