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오기 전에 동네방네 봄 단장 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뒤뜰에 피어있는 매화꽃, 개나리꽃, 그리고 튤립이 어느새 꽃망울을 드러내고, 초록색 잔디가 새초롬히 고개를 들어내었다. 어디 그뿐이랴, 온갖 새들이 새벽부터 노래 부르고 무거운 겨울 코트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아직 꽃샘추위가 오면 더 추울 것이야 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4월쯤엔 뜨거운 여름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바닷가로 몰려가지 않을까 싶다.
그는 어린 나이에 친척에게 입양되어 미국 시민권이 되었다. 이젠 어른이 되어 어엿한 직장인으로 사는 그는 미국의 정세가 불안하여 시민권 증서를 신청했다고 했다. 그러나 일 년이 다 되어가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권 증서가 발급되고 있지 않으니 그의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하였다. “혹시 제가 어렸을 때 친아버지에게 돈 받은 것이 탄로 나지 않을까요? 그래서 거짓으로 입양한 것을 알고 미국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닐까요?”라는 그의 질문에 “그럴 일은 없습니다. 시민권 증서는 항상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라고 했지만, 그는 불안한 마음에 거의 50번이 넘는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댁은 지금 미국 시민입니다. 그런데 왜 쫓겨날 것으로 생각하세요.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시면 증서가 나올 겁니다.”라고 하자. “제가 선거권까지 있고 투표까지 했는데 빨리 증서를 안 주는 것은 제 신원조회를 하면서 카톡 내용까지 다 조사하는 것은 아닐까요?”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불안해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시민권자까지 협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제가 한국에 있고, 결혼할 여자는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그래서 비자 없이 미국에 가서 혼인신고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영주권 신청하면 되나요?”라고 물었다. “비자 없이 미국에 와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혼인신고라니, 그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여자 친구가 먼저 약혼초청을 한 후, 미국에 와서 결혼하고 난 후 영주권 신청을 해야 합니다.”라고 했을 때, 그가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이민 결혼을 전문으로 알고 계시는 분은 아닌 것 같네요. 다들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런 것도 모르면서 왜 상담을 하십니까?”라며 비아냥거렸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그래서 “그럼, 비자 없이 와서 혼인신고하고 영주권 신청해서 영주권 받으시지요.”라는 말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대학생은 영주권자이면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6개월을 한국에 머물지 않았음에도 혹시 자주 한국을 왔다 갔다 한 이유로 영주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또는 미국 입국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는 학교 때문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에 그는 ‘마음이 놓인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단하기는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다. 트럼펫 소리가 웅장하듯이 트럼프라는 말만 들어도 많은 사람이 몸을 떤다.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일이 또 닥칠지 모를 불안에 마음이 스산하다. “그냥 조용히 사십시오. 내가 할 일만 하면서 그냥 조용히 사십시오.”라고 말은 하지만, 불안해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착잡하기만 하다. 특히,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이 자기에게 들이닥칠지 몰라 몸 둘 바를 모른다. ‘언젠가는 떠나가겠지, 그래 언젠가는 무서운 이 폭풍이 다 지나갈 거야.’라고 말은 하지만, 트럼프가 자꾸 그들을 궁지 속으로 몰아넣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기만 하다.
어떤 부부가 “우리는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은데, 미국 시민권자를 우대해 주는 어느 나라가 있을까요?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라고 물었다. 부부의 요상망칙한 질문에 내 머리가 잠시 삐걱거렸다. 미국이 대단한 나라인 건 알겠지만, 미국 시민권자를 우대해 주는 그런 나라를 찾는 이 멍청하고도 멍청한 부부의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미국 시민이 된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것은 미국에서의 일이지, 다른 나라에 가서 “저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인데 저에게 어떠한 대우를 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들은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라며 눈을 흘길지도 모른다. 미국 시민권 증서가 무슨 박사 학위도 아니오. 노벨상도 아니건만, 과연 누가 대우해 줄까? 저 부부의 그 한마디 말이 너무 어이없어 이럴 때는 할 말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냥 말을 안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일 뿐이다.
무서운 폭풍은 곧 멎을것이다. 그 날이 올 것을 믿으며 살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