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에서 튤립의 우아와 그 원색의 깊은 정열로 맞짱뜰 놈이 또 어디있을까. 장미는 분명 아름답지만 어딘가 간지럽고, 수선화는 결백스럽고 고고해서 너무 뜨악하다. 푸른 하늘 아래 풍차를 배경으로 무더기 관능으로 피어오르는 획 굵은 유려함이며 언제 남몰래 사랑이라도 꿰어 찼는지 붉고 노란 그 미끈한 배불뚝이 몸매가 풍요롭기까지 하다.
튤립은 원래 중앙아시아의 톈산 산맥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만 제국시대를 거쳐 지금으로 말하면 터키를 통해 16세기 말에 상인들에 의해 유럽 각지에 전해졌다. 특히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의 아랫지방인 홀랜드에 사는 그러니까 언어로는 Dutch를 쓰는 사람들에게 전해져 글자 그대로 꽃을 피우게 된 경우인데, 우리말로 화란이 그 튜립으로 유명한데에는 사실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우리가 벼를 심을때 파종보다는 모판으로 하듯 튤립은 씨앗으로 육성하는 방법보다는 자근을 육성하는 방법이 더 효과가 있는 그런 구근식물이다. 그런데 이 양파 모양의 구근식물이 유럽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예상치 못한 기묘한 점박이와 모자이크 등 아름다운 문양을 갖춘 각종의 돌연변이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유럽인들은 구근의 질병으로 인한 이런 무늬를 선호하고 그 이상현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때의 17세기 유럽은 상업과 해운이 발달한 네덜란드가 중심지였으며 당시 영국을 능가하여 모피 무역의 근거지로 뉴욕의 맨하탄을 식민지로 가지고 있던 시기가 바로 이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구근식물인 튤립은 단기간에 늘리기 어려운 종류여서 절대 다수가 원함에도 결국 공급 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고, 그것이 품귀 현상을 일으키자 가격은 나날이 올라갔다. 일단 사기만하면 다음날 아침에는 반드시 올랐다. 그 기현상이 일정 지속되자 농사를 짓던 일반시민도 모두 그 품귀현상에 일제히 참여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튜립 불패신화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를 잡아 더욱더 가격을 치솟게 했다. 그러자 튤립구근이 없는 겨울에는 현물시장이 아닌 선물거래시장으로 전환하여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구근을 계약으로 팔고 사고하는 그런 투기가 술집마다 벌어졌다.
거래를 반복하는 가운데 몇 사람을 통해 알고 있고 채권자와 채무자가 어디의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레이던에서 암스텔담에서 하를럼에서 그것이 상업이 되었건 빵굽는 일이 되었건 거의 다른 일은 전 국민이 생업을 전폐했다. 사고나면 오르고 내일 아침이면 또 오를 것을 알기에 오로지 튤립구근을 구하러 다니는 이른바 ‘묻지마’ 투기의 용광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침내는 양파만한 그 구근 한 알뿌리의 가격이 당시의 범선 배 한척과 맘먹었다. 고급 품종 구근 한알에 집을 사고 배를 사는데 누가 힘들여 빵을 굽고 등을 굽혀 호미질하며 눈을 비벼가며 옷감을 자아낼 리 있겠는가
그러나 다하지 않는 잔치가 없듯 튤립 사재기는 어느 순간 포화점을 넘어 방향을 돌리더니 드디어는 가격이 하락세로 반전되면서 비극은 왔다 팔겠다는 사람만 넘쳐났으므로 끝내는 거품이 터져버린 것이다. 이 과열 투기가 심리였듯이 급격한 하락 역시 심리였다. 날이 새고 나면 먹을 수도 없는 이 병걸린 구근식물은 여지없이 사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전 재산을 잡아먹은 그 구근을 팔 수없게 되자 상인들은 빈털터리가 되었고, 튤립에 투자했던 귀족들은 귀족대로 영지를 국외에 담보로 잡혀야만 했다. 네덜란드가 바다 건너 이웃한 영국에게 경제대국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는 결정적인 한 요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과열 투기현상으로, 사실상 최초의 거품 경제 현상으로 인정된 이 튤립 파동(Tulip mania)은 자산 가격이 내재적인 가치를 능가할 때,하나의 은유로 지금까지도 회자 되곤 한다. 그래서 암스텔담이 튤립의 본고장이된 연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튤립에 묻혀있는 인류의 슬픈 경제사가 그리고 재물에 관한 인간의 한 심리가 튤립 원색 겹겹에 빼곡히 베어있다. 그래서 핑계없는 무덤없고, 세상 일에는 예외없이 그럴만한 곡절이 다 있는 것이다. 요즈음 떠들석한 비트코인 현상도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