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은 때로는 그 존재 자체로 누군가의 꿈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그 선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가 마침내 그 품에 안긴다면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그리도 그립고 그리워하던 정인을 대하듯 울음보를 터트려버리지는 않을지… 그래서 그 길은 발이 아닌 마음으로 걷게 될 것입니다. 알래스카 트레킹에서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산이자 길의 끝에 있는 Exit 빙하 지대의 Harding Icefield(빙원). 신성한 신들의 거처인 듯한 이곳을 오늘 드디어 오르려합니다.
전날 폭우 속에서 잠시 속살을 건드리려다 만 Lost Lake 트레일과는 바로 이웃을 하고 있는데 Seward highway 4마일 지점에서 꺾어 9마일 정도를 들어서면 인간의 길은 끝이 나고 선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빙하와 빙원에서 녹아내린 물들이 흘러 이룬 강물을 거슬러 달려가는데 거칠고 광막한 풍경이 또 다른 지구의 이방에 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미 시워드를 출발 할 때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빙하산으로 다가갈수록 비는 더욱 세차게 뿌립니다.
잠시 공사중으로 멈춰서서 가려는 방향의 차량 유도를 기다리며 또 다시 일어나는 인간적인 갈등. 차라리 돌아 가버릴까? 그러나 신기하게도 주변은 비구름으로 어두운데 저기 저만큼에서 빙산의 정상에만 빛기둥이 내리고 있습니다. 마치 메시아의 출현처럼 마음을 이끄는데 가야하는 올라야만 하는 절대절명의 계시를 내리는 것 같습니다. 절대자의 묵시로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 엑시트 글레이셔 트레일.
6킬로미터의 길을 1000미터 높이를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니 그 경사도의 급함이 계산이 되는 만만치 않은 길이 아닙니다. 주차하고 주섬주섬 여장을 챙기는데 거짓말처럼 비는 개고 햇살이 환히 비춥니다.
워낙 오락가락하는 해안 산악지대의 날씨지만 지금 이순간 비가 그쳐주니 다만 고마울 뿐입니다. 왜 하필이면 비상구 혹은 출구의 뜻인 Exit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아마 현실을 벗어나 신선의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닐까? 아니면 만년의 시간을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러 가는 출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의 답은 산을 오를수록 또 하딩 빙원으로 다가가면서 자연스레 얻어집니다.
이제 자연의 빗장을 열고 더욱 비밀스런 신의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트레일은 150미터 고도에서 시작해서 Marmot Meadow가 펼쳐지는 2km 지점의 300미터를 오르게 되고 이내 절벽구간이 1km 정도 이어지는데 아득한 발아래 펼쳐지는 빙하의 장대한 흐름을 조망하며 오르게 됩니다. 그후 리지를 따라 하염없이 오르면 막다른 인간의 길이 나타나고 신선의 길이 시작된답니다.
주차장도 초반 산행길도 많은 인파로 붐빕니다. 트레킹 제일의 명소이자 빙하의 바탕부분에서 올려다보는 비경이 압권이라 일반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두 유도하니 관광버스도 다녀가는 곳입니다. 길을 꺾어 본격 등산로로 들어서면 그 수런함은 사라지고 한적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젊은 백인 한쌍과 수인사를 나누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오릅니다. 조금 말을 섞어보니 유럽에서 온 친구들인데 이렇게 떠나온 곳은 각자 달라도 가슴에 품고 온 것은 오직 하나. 명산을 오르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