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대표적인 치료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되는 ‘1침 2구 3약’이라는 표현이 있다. 한의학적 치료방법을 선택할 때 우선은 침이요, 그 다음은 뜸, 그 다음은 한약이라는 뜻으로, 대부분의 질환은 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니 우선은 침을 사용하여 치료에 임하는 것이 첫째이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는 뜸으로, 그 조차도 충분치 않을 경우는 한약을 사용하는 것이 옳바른 순서라는 뜻을 담은 표현이다.
침이 잘 듣는 질환은 침으로… 한약이 잘 듣는 질환은 한약부터 시작하는 것이 원칙
이는 병의 증세가 가벼워 침만으로도 충분한 치료효과를 볼 수 있을 때 굳이 한약을 사용하는 과잉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침만으로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질병의 경우에는 바로 침 이외의 치료법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한의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 세가지 치료법은 각각의 뚜렷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어 침만 사용해서 모든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한다거나, 약만을 사용해 모든 질환을 고쳐낼 것을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즉, 어느 특정 질환에 더 효과적인 치료법은 있을 수 있지만 ’언제나 효과적인’ 한가지 치료법을 찾으려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침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하고 빠른 변화’
우선 한의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침의 경우, 환자에게 바로 적용할 수 있고, 그 치료 반응 또한 대부분 즉각적이고 신속하다는 장점이 있다. 침의 효과를 나타내는 표현 중에 입간견영(立竿見影)이라는 말이 있는데, 뜻을 풀이하면 ‘장대를 세우자마자 바로 그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말로서 침을 놓자마자 통증이 소실된다거나, 마비가 풀리거나,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근육이나 골절을 움직일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또 막혀있던 말문이 트이거나, 또 수일동안 보지 못했던 변이 풀리고, 체기로 인하여 정체된 위장이 움직이는 등의 즉각적인 반응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주로 병의 경과가 급성이거나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가 그만큼 침의 적응증이 많으며 효과 또한 눈앞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경우이다. 또 침의 주 역할이 몸의 틀어진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고, 모든 병의 원인의 균형의 상실임을 감안하면 침의 적용범위는 굉장히 넓어진다. 하지만 병의 경과가 오랫동안 만성으로 진행되어 진액과 기력이 다 빠져버린 경우, 즉 전반적인 허증이 나타날 때에는 아무래도 침만으로 병을 완치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뜸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몸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
반면에 뜸을 표현하는 한자어인 구(灸)는 오랠 구(久)와 불화(火)의 합성어인데, 이는 약한 불을 오랫동안 신체에 적용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뜸은 침에 비하여 한번 치료에 소요되는 시간도 길고, 병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전체적인 치료기간도 오래 걸린다. 또 침보다는 효과가 다소 느긋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이미 만성으로 진행되어 버린 병증에(특히 굳어서 차가워지는 증상 같은)는 오히려 더 좋은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한약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몸을 튼튼하게 해주는 것’
마지막으로 한약은 침 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복잡하거나 오랜 치료기간을 요하는 병에 투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침과 뜸을 통해 몸안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는 치료가 힘든 경우, 외부에서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 또 몸안의 과하게 차있는 것들을 땀, 대소변등을 통해 내보내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물론 침과 뜸도 장기간 적용해야 할 경우도 있고, 한약 또한 감기나 음식에 의한 체기(滯氣) 등 병에 따라서는 짧은 기간에도 큰 효과를 거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성적으로 진행된 병이나 오래된 허손(虛損)을 물질적으로 보해주는 치료에는 한약이 가장 대표적이며 효과도 좋고, 이럴 경우 침과 뜸은 치료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병행해서 적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부작용 없이 치료하는 의사는 있지만, 부작용 없는 치료법은 없다
한가지 덧 붙이자면 한약과는 달리 침과 뜸은 지극히 안전하다고 믿고 주장하는 책을 보면서 집에서 스스로 병증에 따라 침, 뜸을 시술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다. 비록 칼이나 총처럼 순식간에 큰 물리적 피해를 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인체의 생리와 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없이 단순히 “무슨 병에 어느 혈(穴)”이란 전병전방식(專病專方式) 사고로 시술한다면, 이는 결국 병을 악화시키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는 뜸도 마찬가지이다.
언뜻 보기에는 아주 적은 비용으로 놓는 자리와 적응 증상 몇 개만 익히고 외워서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체는 그리 간단한 기계가 아니며 온 몸의 장부가 복잡다단하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번 진단된 병명과 전형적으로 나타난 증상에만 매몰되지 말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몸의 상태를 예의주시하여야 하는데 이는 훈련받은 의료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작용 없이 치료하는 의사는 있지만 부작용 없는 치료법은 없다는 주지의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함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