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와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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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 토요일날 저희 오피스로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습니다. 한 중년 신사분께서 점잖으신 목소리로 “지금 제 잇몸이 너무 아픈데 오늘 꼭 가서 치료 받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날따라 빽빽하게 스케쥴이 차있어서 조금 힘들 수도 있었지만,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거 같아서 조금 기다리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일단 오시라고 말씀드렸고, 오후 두시쯤 그 환자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디가 많이 불편하신가요? 어떻게 오셨죠?” 라고 물어 본 제게 환자분은 아무 말 없이 입을 벌리시고는 손가락으로 아랫 부분에 있는 앞니를 가리키셨습니다. 저는 별 생각 없이 환자 분 입을 들여다 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단정한 헤어 스타일을 하시고, 깔끔한 신사복을 입으신 중년 남성분의 입안에서 자신의 치아보다 더 큰 치석들이, 앞니 브릿지 아래에 있는 잇몸을 덮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치석 아래에 있는 잇몸들은 빨갛게 붓고 피가 난 상태로 치아와 떨어진 상태로 너덜너덜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환자분 말로는 15년 동안 치과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참으셨어요. 치과 한번 오셔서 검사 한번 받으시지 그러셨어요” 라고 제가 물어보자 그 신사분께서는 수줍고 겸연쩍한 말투로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미련해서…” 라고 말씀을 흐리셨습니다. “혹시 예전에 치과 치료 받으셨을 때 안좋은 경험이나 무서운 경험을 하신 적 있으시나요? “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신사분께서 “네. 예전에 이 브릿지를 할떄 잇몸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혹시 자신의 이야기나 상황과 비슷하진 않으신가요?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가 어렸을때 치과에서 고통이나 두려움을 크게 경험하고 나면, 그것이 잊혀지지 않고 트라우마가 되어서 , 아주 작은 치료 (클리닝) 조차도 두려워서 치과를 피하곤 합니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직장 때문에 바쁘셔서 자신의 치아를 잘 관리하지 못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이렇게 아플때까지 참고 참았다가 오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이렇게 예전에 치과에서 안좋은 경험을 하셨던 일이 다반사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건, 어떤 방식으로 말을 하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트라우마는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세상에 나오듯, 결국 그 트라우마를 깨고 ,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치과에 발걸음을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이렇게 상황이 악화 될 때까지 악화 되었다가 치과에 오시게 되셔서, 잇몸 상태가 아주 안좋아 져서 잇몸뼈가 거의 없어지시거나, 치아를 발치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보게 되면, 치과의사이자 한 인간 으로서 제 마음은 참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치과에 전화를 걸고, 예약을 잡고, 죽도록 오기 싫었던 치과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환자분들의 의지와 용기에 늘 마음속으로 박수를 쳐 드립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 잘 알고 진심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 동료 치과의사들이 자기도 무서워서 신경치료를 받지 않고 이를 뽑고 임플란트를 하게 되는 경우도 봤습니다.)
One thought can change your life. 라는 말이 있는데요. 저는 이 말을 아주 좋아 합니다. 단 한가지의 생각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지요. 오늘 칼럼은, 예전에 겪었던 트라우마로 치과에 오지 않게 되신 많은 어른아이분들께, 짧은 한 이야기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큰 바다에서 배를 타고 있는 자신을 떠 올려 보세요. 그 배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 갑니다. 그런데 그 배의 뒷편 쪽으로 가서 보시면, 바다에 물결이 지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니 당연히 내가 지나 온 길 뒤에 생기는 물결이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 지나온 물결만 바라본채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잊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 물결이 너무나 아프고 강렬해서, 그 물결만 바라보고 그 물결때문에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잊지 마세요. 그 배는 지나간 물결의 흔적으로 인해서 움직이는게 아닙니다. 오롯이 자신의 ‘생각’ 과 가고자 하는 ‘의지’ 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