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묶어 남미 지역의 최남단을 이루는 파타고니아. 인간이 사는 가장 먼 땅 세상의 끝. 인적과 문명과 소음으로 부터 한발 벗어난 황량한 바람의 땅입니다. FitzRoy 라는 명칭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 지역을 정복한 장군의 이름에서 따왔으니 상호명으로들 많이 쓰고 유명 인사의 사전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향해 사납게 솟아 오른 프츠로이 산군 첨봉들이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의 축을 이루고 있어 생소한 자연미를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어제 만난 세로 토레와 먼 발치에서만 보다가 오늘 드디어 상봉하게 되는 피츠로이. 그 둘을 이은 길 위에서 우리는 주체할 수 없는 감흥과 희열로 걷는 길 너무 행복했습니다. 호수에 그려진 피츠 로이 산군의 잔영을 바라보며 가을이 살포시 내려 앉은 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파타고니아의 선택된 길을 걸으며 28km 10시간의 고행길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경직된 몸을 풀라는 듯이 오랫만에 호수를 끼고 도는 평지에 가까운 들길을 걷게 됩니다. 매사가 마뜩지 않아 앙칼지고 날카로운 아내 처럼 아직 잠재우지 못한 성깔을 그대로 부리는 바람. 그 파타고니아 바람의 음성을 들어봅니다. 태평양을 넘어온 거센 바람을 삼켰다가 토해내는 파타고니아는 이제 그 바람의 상징이 되었고, 오랜 세월 그 바람의 지배를 받아온 폭풍의 대지는 포효하는 바람이 사는 곳으로 간주되어 버렸습니다. 만고의 성상을 그 바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버티고 서있는 만년설산 능선의 기세는 준엄하도록 당당합니다. 산자락에 걸려있는 하이얀 빙하띠는 장구한 역사속에 산이 지닌 시간과 기억들을 놓침없이 굽어보고 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길은 어느 길을 택하던 바람과 보조를 맞추는 길. 산변 풍경은 바람을 몰고 오고 또 다시 그 바람은 새로운 풍경을 구도합니다. 자유인들은 이따금 정해진 삶의 항로 대신 일엽편주에 몸을 맡기고 바람 부는 대로 흐르고 싶은 일탈의 소망을 말합니다. 일상의 번다한 짐을 다 내려놓고 꿈의 배낭을 짊어지고 바람따라 흘러가보는 모험의 길. 내가 동경하는 삶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파타고니아의 바람에 몸을 의탁하여 흘러가는 내 삶의 길이 얼마나 사무치는 희열인지. 지구의 뒤안길 파타고니아에서 순수한 자연의 조각들과 마주하고 걷는 행복한 이길. 살아있음이 축복으로 여겨지며 한없이 생을 찬미하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포인세노트 야영장에서의 캠핑. 말이 캠핑이지 비박이며 노숙이었습니다. 텐트 없이 지내는 동토의 나라에서의 하룻밤. 그래도 특별한 체험으로 남을 수 있는 여유는 12명의 동행이 함께 나눈 고락이었기 때문입니다. 포인세노트 야영장은 그 흔한 피크닉 테이블도 하나 없고 원초적 생리 현상만 해결하도록 간이 해우소를 설치해 둔 것이 고작입니다. 흐르는 빙하 녹은 시냇물 식수로 쓰고 야영의 꽃은 캠프 화이어인데 꿈도 못꿉니다. 세게적 명소답게 산장같은 시설을 두고 잇속을 챙길 법도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자연은 자연 그대로 존재하게 하려는 노력으로 편의 시설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파타고니아는 이 세상 가장 훌륭한 최고의 자연 공원일지도 모릅니다. 그 자연을 대대손손 청정하게 물려주기위해 인간을 위한 인공물은 거의가 없습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