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길. 피츠 로이와 세로 토레를 이은 길 (1)

간밤 쉬임없이 몰아치던 폭우. 이 상태의 일기로 산에서의 숙영은 커녕 트레킹 조차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새벽 5시 까지 창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지난 저녁시간 텐트도 없는 야영이 무리라는 의견이 소수가 되어버린 야영 찬성 결정이 무색하게도 이 시간 까지 비가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신은 그리고 산은 나를 또 거부하는가! 초조함에 다시 선잠을 자는데 6시에 울린 자명종 소리. 굳이 야영을 못할 바에는 이렇게 빨리 서둘 필요가 없잖은가 하는 체념같은 자조로 알람을 해지하면서 귀를 기울이니 어쩐 일인지 빗소리도 나지 않고 바람소리도 죽어 있습니다. 넓은 창으로 내다보니 비가 그쳐보였습니다. 바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나가 확인한 바 비록 아직은 촉촉하지만 청명한 기류에 무수하게 많은 총총한 별들이 하늘을 가득메우고 있습니다.

 

프론트 데스크에 앉자 잠에 취해 혼미한 눈동자를 한 직원에게 오늘 내일의 날씨와 산행 컨디션을 확인해 달라하니 변경된 일기 예보는 한마디로 Perfect(완벽)하다고 합니다. 한없이 기쁜 마음에 동행들을 깨우고 준비하라 이릅니다.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기력없던 종주의 열정이 우리들의 행동들을 바빠지게 하면서 파타고니아의 산촌 엘 찰텐의 아침은 그렇게 힘차게 열리고 있었습니다.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완벽함을 추구하며 배낭을 꾸리고 제법 어께끈에 내리는 하중이 묵직한 느낌으로 여명을 헤치며 장도의 길에 오릅니다. 칼라파테 호텔 소유 동포가 알려준 요즘의 분위기. 공원측에서 그룹 단위의 산행을 통제하며 현지 가이드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다며 그들이 출근하기 전에 길을 나서라는 권고를 받아드려 이 어둠을 걷고 가는 것입니다. 초입에서 화이팅 한번 크게 외쳐보지 못하고 서둘러 언덕을 오르다가 공원 현판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대열을 고르는데 여기저기서 단말마 경탄의 말들이 쏟아집니다. 아침 해살을 받아 순백의 설산들이 빛을 내는데 어제밤 그렇게 무수이도 내린 비는 산정에는 눈이 되어 비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감동의 연속은 오전 내내 세로 또레 빙하를 품은 호수까지 이어집니다. 남김없이 버려버린 하늘. 그래서 티없는 푸른 하늘이 설봉들과 대비되면서 더욱 더 청초함으로 가득합니다. 세로 또레를 보좌하는 아이거와 세로스탄아르트의 삼봉엔 비밀스러움을 감춘 베일 같은 구름이 둘러있고 여름 빛이 가득한 계곡 위로 펼쳐놓은 동토의 장엄함. 참으로 마음이 설레고 눈이 부십니다.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피츠로이 트랙은 피노세트 야영장 까지 치고 올라가 배낭을 두고 피츠로이 산이 낳은 로스 토레스 빙하호를 보고 내려와 야영하고 다음날 세로 또레를 품은 빙하호를 만나고 하산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길을 잡았습니다. 왜냐하면 첫날 무리가 가더라도 조석 변개하는 파타고니아의 날씨를 믿기 어려워 미리 할 만큼은 다 해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여차하면 하산하면 세시간이면 되고 또 일찍 하산하여 이어지는 칠레 파타고니아의 W트랙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실행에는 24km 이동에 10시간의 강행군이 따라야 했습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