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인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데, 다른 사람 다 타는 후드 스탬프도 없고, 사회보장금도 없고 메디케어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나도 저런 것들을 탈 수 있을까요? 너무 답답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노인의 얼굴엔 어떠한 작은 희망이라도 있으려나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잘 걷지도 못해서 병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는 노인은 지금까지 일해서 세금을 낸 적도 없고 시민권자도 아니었다. “영주권자라면 후드 스탬프는 받으실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시민권을 취득해야 합니다.”라고 했을 때, “그럼 내가 시민권을 따면,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라고 한다.
그렇다, 지금은 시민권자가 아니면 정부의 보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그럼 내가 시민권을 따면 그런 것들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더니 “그럼 시민권 신청하려면 얼마가 드나요?”라고 묻는 노인에게 “아직 75세가 되지 않으셨으니 시민권 신청비가 $725입니다.”라고 했을 때 노인은 “예? 얼마요? $725라고요? 아니 뭐가 그리 비싸요?”라며 기절초풍할 듯 큰 눈을 뜬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큰돈이다. 그러나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 노인은 영주권 받으신지 20년이 되지 않았으니 통역을 쓸 수 없었고, 영어도 부족하니 시민권을 신청한다 해도 인터뷰를 잘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시민권을 따야 하는데, 노인이 돈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 공부하는 비용과 신청서 작성비 좀 깎아 주세요.”라고 한다. “노인 어르신께서 무슨 돈이 있으시겠어요. 그러니 자녀에게 부탁하시지요.”라고 했더니 그런 말을 어떻게 자식에게 하느냐고 한다. 그러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한 분이면 몰라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이 모두 다 깎아달라고 해서 안 되고, 또 저희도 사무실 운영을 해야 해서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 노인은 “내 지갑에 지금 돈이 얼마 있는지 아세요? 1달러짜리 30개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가난한데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낼 수가 있겠어요.”라고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적게 내고 많이 가지려고 애를 쓰는 그런 경향이 있다. 물론 나도 돈을 조금 쓰고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하지만, 어디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하던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 고집이 꺾일 것 같지 않아 보였던지 “그럼, 다른 데 가서 해야지 어찌할 도리가 없네요.”라며 문을 나가는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선 나의 마음이 어째 편치가 않다. 두 시간을 그렇게 입씨름 같은 대화로 결국 노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을 아닐까? 라는 후회도 있지만,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훌훌 털어버릴 수밖에,
그렇게 한 달쯤 되었을까? 노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아들하고 딸한테 이야기해서 돈을 마련했어요. 그래서 가려는데 가도 되겠어요?”라고 한다. “아니 다른 데서 하신 줄 알았는데 아직 안 하셨어요?”라고 묻자 “그러려고 했는데 자식들이 꼭 거기로 가라고 하네요.”라시는 노인의 시민권 신청을 끝냈는데, “보니까 봉사센터에서 돈을 너무 많이 받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셨다. “글쎄요. 봉사센터니까 싸게 받는 겁니다. 변호사에게 가면 적어도 $400은 주셔야 할걸요.”라고 하자, “하긴 그렇지요.”라는 노인은 그래도 어딘가 작성비에 대해 불편하신가 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사실 버는 것도 없으면서 사무실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렵다.
어떤 분이 “이것 하나만 찍어주세요.”라며 봉투를 내밀었다. 우표를 하나 찍어 달라는 말이다. 우표기에 봉투를 넣어 우표 도장을 찍어 건네며 “46센트 주세요.”라고 하자 “아니? 우푯값도 받아요?”라며 나를 바라본다. “네, 주십시오.”라며 손을 내밀자 하는 수 없이 동전을 세어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넣으면 찍히는 편리한 우표지만, 우리에겐 그것 하나마저도 큰돈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와 쩨쩨하게 그걸 내라고 한다.”라며 웃음을 짓지만 나는 굳이 동전을 받아 챙긴다. 전에 어떤 목사님께서 무슨 내용이 적힌 5장의 용지를 내밀며 “복사기에서 각 장 100장씩 500장만 찍어주세요.”라고 하기에 “제가 해 드릴 수는 있지만, 종잇값과 잉크값을 주셔야 하는데요.”라고 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예수님의 진리를 실천하는 봉사단체에서 그냥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봉사하라고 하셨지만, 돈까지 주시지는 않으시니 어찌할까요?”라고 하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봉사하는 사람이 그러면 안 돼요.”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밖으로 나가신다.
아마 그들은 저 여자가 ‘우푯값’과 ‘복사비’를 ‘달라.’라는 그 말을 들먹이며 나를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건 말건 마음이 상할 일이 없다. 그런 일에 쩨쩨해도 나는 정말 괜찮은 여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