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길 그러나 긴 여운, Lion’s Head Trail (1)

아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집니다. 간밤에도 굵고 잦은 빗소리에 누구의 방문이 있나 싶었을 정도로 한번씩 심하게 차 지붕을 두드리며 흔들곤 했습니다. 산행이 끝난 저녁에 내리는 비는 아늑한 평화의 휴식을 마음에 안겨주는데 산행을 앞둔 아침의 비는 참 불청객이라 밉죠. 그래도 길은 나서야 하고 꿀꿀이 죽처럼 아침을 끓여 먹고 몸을 데운 후 떠날 채비를 합니다. 어제 묵은 이 야영장은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데 자가등록을 하고 봉투에 약정금을 넣어 디파짓 통에 투하하면 됩니다. 찢게된 영수증 같은 것을 야영 사이트 입구에 붙여 놓으면 되는데 대부분 부대 시설은 미미합니다. 화장실도 푸세식이며 펌프질해서 길어올리는 지하수외에는 전무합니다. 샤워 시설도 없으니 자연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러 가는데 야영장의 길이 거의 물길이 되어버렸고 화장실만 덩그러니 섬처럼 떠있습니다. 가까이 차를 대고 도하하여 볼일보고 나와 뒷켠을 보니 숲 전체가 강이 되어 물이 콸콸 흐릅니다. 야생에서 샤워장이 따로 있어야 할것도 아니고 마침 저기 저 강물을 범람시켜 이곳 까지 끌고 왔으니 얼마나 편해졌습니까. 빙점의 기온도 아랑곳 없이 훌훌 벗고 샴프질에 비누칠에 시원하게 즐기는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거리낄 게 없습니다. 물기를 닦고 차에 앉으니 그야말로 날개 없어도 하늘을 날것 같은 이 뽀송뽀송한 느낌. 그렇게 비요일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남은 일정 동안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황금색 들판과 흰 설산이 아름다운 이 9월도 나쁘진 않은데 7월을 제외한 8,9 월은 비가 잦아 여름 성수기는 7월로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연어 산란기가 7월 한 시절이니 빨간 육질색의 야생 Red Salmon 을 잡아서 맛보려면 반드시 이 때 방문을 해야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알을 낳기 위해 반드시 돌아와 산란 후 죽어가는 연어의 일생. 회귀본능이라 하는데 이역하늘 아래서의 생활이 30년에 이르는 나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은듯 합니다. 포장마차가 그립고 친구가 그리운 요즘이랍니다. 그 친구들과 함께 하던 천엽의 즐거움. 알래스카 연어잡이가 꼭 그와 같습니다. 한켠에는 초고추장 만들어 회먹을 준비하고 매운탕거리 대령하고 한켠에는 대형 잠자리채 같은 그물을 여럿이 힘을 합해 풍덩 물에 던지면 물반 연어반의 강에서 운좋으면 한번에 내 다리만한 크기로 몇 마리씩도 건져올립니다. 물론 외부인에게는 허락된 일은 아니지만 원주민들은 동계 식량으로서 포획이 허가된 일입니다.

매년 7월 1일과 16일에 시작되는 두차례의 미주 트레킹의 알래스카 일정의 마지막에는 이런 천렵을 하면서 얻는 야생의 맛도 가미하는데 캠핑카 설치하고 모기 염려없이 해물로 차려지능 풍성한 식단으로 나날을 보낼 수 있습니다. 수년전에 한국의 가을처럼 붉은 단풍이 보고싶다며 찾아온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웨스트 버지니아의 단풍명소를 소개하며 모시고 함께 여행한 인연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도 돌아가는 길에 대형 빨간 연어 댓 마리와 차가버섯과 불로초등 화물 수용 한도 무게로 까지 만들어 한박스 만들어주십니다. 가진 것 없어도 인복이 많은 인생이랍니다. 워싱턴으로 돌아가면 몇차례나 지인들과 연어 잔치를 벌려야겠습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