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무거운 소재를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 대학에서 원숭이를 이용해서 임상실험을 하고 있었다. 원숭이들에게 동전 하나씩을 나눠주고, 점심시간때 동전을 가져오는 원숭이에게는 포도 한알씩을 주었다. 단시간에 원숭이들은 점심때 포도의 디저트를 즐기기 시작했다. 얼마후 실험의 방식을 조금 바꾸었다. A 원숭이에게는 평소와 같이 포도 한알을 주었는데, B원숭이에게는 3알을 주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하면서 A 원숭이가 갸우뚱 거렸는데, 이 모습이 반복되자, 당장 화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다음 날에는 A 원숭이는 동전교환으로 제공된 포도 한알을 연구원에게 집어 던져 버린 것이다. A 원숭이는 자신이 왜 B 원숭이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기에 분통이 나는 것이다.
반면에 늑대의 세계에는 서열이라는 것이 있다. 사냥하고 먹이를 먹는 순서, 암컷과 관계를 소유할 수 있는 순서는 알파 수컷이 우선이다. 알파 수컷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먹을 수도, 잘 수도, 같이 다닐수도 없는 것이다. 이럴 경우, 알파 수컷이 더 많은 먹이를 먹는다고 오메가(가장 약한) 늑대는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인간의 5대 죄악중에 하나인 ‘질투’는 한가지 조건이 성립되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조건의 “동등하지 않은 상대” 이어야 한다. 즉, 나보다 강하고 우월한 알파 상대에게는 절대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질투는 내가 생각할때는 별것도 아닌 상대, 즉, 우스운 상대에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대에 대한 평가는 아주 주관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도 쉽게 목격된다.
한국사람들이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는 일제 강점기, 임진왜란, 왜구침범등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그들이 우리에게 문화를 전해 받은 미개한 집단이었는데, 우리보다 강해진 현실에 ‘질투’가 첨가된 것이다. 종종 일본의 문화가 백제에서 전해진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뉴스, 일본의 왕족도 한반도에서 갔다는 속설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반면, 일본 또한 한국에 많은 질투를 갖고 있어서, 광개토대왕비에 일본이 벌써 그 당시에 국가로 표현 되었네, 아니네 말이 많다.
질투는 우리주변에서 아주 쉽게 목격할 수 있어서, 참으로 우리를 많은 감정의 함정에 빠트리고 있다. 좋아하는 여인의 남친에 대한 질투, 부모에게 큰 유산과 자금을 지원받는 이웃에 대한 질투, 친구의 대박 주식투자에 대한 질투, 동창의 번창하는 사업에 대한 질투,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이웃사촌에 대한 질투… 본인도 30년 지기를 질투로 잃은 아픈 경험이 있다.
질투의 속박에서 해방되려면 2가지 방법이 있다. 한 방법은 자신이 알파라고 믿는 사고를 격파하고, 자신은 베타 또는 오메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다른 알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해서 그냥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보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갑부 부모를 만나서 그런 것이고, 크게 사업을 하는 것은 돈 많은 처가집에서 사업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도 그 환경에서는 그런 성공을 할 수 있지만, 내가 알파가 아니기에 이런 상황인 것 뿐이다.
두번째 방법은, 개인의 성격에 따라서 조금 힘들 수 있게지만, 솔로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를 등지고 반사회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만 측정하고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키운 토마토의 크기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웃이 사과, 포도, 배를 키워서 동네 이웃들에게 돌려 맛을 보게 해도, 나는 나의 토마토가 제일 좋은 마음이다.
질투를 포함한 희노애락은 결국 내 안에서 만들어지고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 겨울의 마지막 한파에 차 한잔 마시면서 가슴속의 호수에 종이배를 띄워 보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물결이 강하면 종이배는 가라앉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