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이는 봄바람이 살갗을 스친다. 지금쯤 고향 동산에는 진달래가 얼마나 흐느러지게 피어 있을까? 동산에 핀 진달래꽃을 넣어 화전을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제 그런 맛을 죽을 때까지 볼 수 없으련만, 봄 내음 맡으며 왠지 모르게 화전 부쳐 주시던 어머니가 그립다. 누군가 “봄에는 쑥국이 제일 좋았는데 여기서 먹는 쑥국은 그런 맛이 나지 않아요.”라고 한다. 아마 토질이 다르다 보니 그런 맛을 느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소아마비로 장애의 몸을 지탱하는 그녀, 그래서일까, 그녀는 장애 아동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싶다고 했다. “장애인이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은 없어져야 합니다. 그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어요.”라며 “그런데 장소가 없어서 걱정이에요.”라고 하였다. 글쎄 정말 장애 아동이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도 있다. 장애를 극복한 사례는 너무 많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도 무엇인가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우리 교육실이 작은데 거기라도 사용해 볼래요?”라고 하자 “고맙습니다. 여기라면 충분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요.”라는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흘렀다. 우리는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희망을 품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천사 같은 마음으로 장애 아동에게 희망을 품게 해 줄 수 있다는 그 한 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키워 낸 피아니스트 아동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많은 관중 앞에서 아름다운 멜로디로 피아노를 치는 그 청년의 모습이 너무 대견해 보였다. 그러나 연주가 끝난 다음, 질문자가 묻는 질문에 선뜻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어떤 장애인지 모르겠지만, 그 청년은 말을 이어받지 못했다. 몸은 옆으로 약간 비뚤어지게 서 있었고 두 손은 가지런히 앞쪽에 모아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이 아이가 이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이제 이 아이는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답니다.”라고 하였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장애를 슬프게 받아들이기보단 장애를 가졌어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면 무엇인들 못할까? 이제 우리는 그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었고 이제 그녀는 그토록 원하던 피아노를 장애 아동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장소가 생겨 기뻤다.
언젠가 어느 식품점에 갔을 때였다. 젊디젊은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그가 가리키는 대로 아내가 장을 보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한쪽 팔과 입뿐이었다. 그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그의 등 뒤에서 성호경을 그었는데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다음 칸에서 그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가 “Thank you”라고 말하며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마 전쟁터에서 몸을 상하여 장애인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지금 멀쩡한 몸으로 걷고 서고 앉을 수 있지만, 언젠가 우리도 그 사람처럼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앓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전에 만난 한 여인도 트럭과 마주치는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을 때 ‘죽고 싶은 생각 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애인 아파트가 나오고 간병사가 돌보아 주었을 때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찾아들었다. 그녀의 아파트를 찾았을 때 그녀는 훨씬 매끄러워진 얼굴로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셔서 너무 행복합니다.”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그녀, 걸을수는 없지만,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며 행복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봄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화사한 봄처럼 장애를 가진 아동들에게 희망을 안겨 줄 수 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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