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세요

그를 만난 지 딱 십 년, 시민권 신청을 하기 위해 처음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던 것이 인연이었다. 그는 시민권을 취득한 지 얼마 후, 직장을 잃었고 한동안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지만, 이미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장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방세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 나이 어린 집 주인에게 심한 욕설을 들어가며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삶이 고달플 때마다 그리고 정신적 고통을 받을 때마다 우리를 찾아왔다. 그에게 큰 도움은 줄 수 없었지만, 기금 모금을 하여 방세와 생활비를 도와주었지만, 우리가 그를 도와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던 그는 결국 노인 아파트를 얻어 거주하게 되었고 은퇴연금과 정부 보조 혜택을 받으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에게 찾아온 든 암 때문에 그는 큰 수술을 했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찾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식도 가족도 형제도 없는 그는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수술로 목소리를 잃었던 그는 “차라리 죽는 게 좋은데 죽기 전에 어딘가에 살고 있을 자식 얼굴 한번 보는 게 소원입니다.”라며 흰 종이에 글을 써 보여 주었다. “말을 못 한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곧 나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자 “목숨이 붙어 있어서 살고 있지만, 그냥 가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보호자가 되어줄 사람 없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때 “지금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보호자가 와 주었으면 합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갔을 때 그는 힘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괜찮을 리야 없겠지만, 말을 할 수 없는 그와의 대화는 눈빛과 몸짓뿐이었다. 의사는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라고 하였다. ‘호스피스 병원’이라는 말 한마디가 어쩐지 서먹하게 들린다. 그래도 치료를 받기 위해 그를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라는 말을 남기고 “선생님 제가 또 올게요.”라는 말을 한 후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호스피스 병원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이틀 후 “환자가 사망하였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병원을 찾았을 때 그들이 “장례를 준비해야 합니다.”라고 했을 때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장례까지 해 줄 수 처지는 아니었다. 삶이 고달픈 것은 이겨낼 수 있겠지만, 죽어서도 그의 시신은 땅에 묻힐 수 없었다.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숨을 놓은 지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는 차가운 병원 냉동실에 머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를 찾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를 형제같이 동생같이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나에게 의지했던 그를 더 많이 보호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한 것이 한스러움으로 남았다.

어찌 그렇게 한 많은 세상살이를 미련 없이 떠나버렸을까, 어딘가에 살고 있을 아들과 딸을 만날 수 있는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았던 그, 언젠가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 부모님 산소를 찾아볼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렸건만, 그는 모든 것을 이루지 못한 채, 한마디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난 십 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그래도 우리는 어려움이 있거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그렇게 살았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고 보니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갔을까? 죽음이 찾아든 순간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누구를 찾았을까, 무엇을 그리워하며 눈을 감았을까? 장례라도 빨리 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경우엔 시신을 기증해야 합니다.”라며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병원 직원, 이럴 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찌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가장 잘하는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분은 차갑게 식은 몸마저 땅에 묻히지 못하고 냉동실에 누워 있건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다. “선생님 모든 것 다 놓으시고 잘 가세요.” 아멘.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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