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은 여자에게 있어 가장 큰 축복이자, 또 인체의 가장 오묘한 신비중 하나이다. 하지만 아기를 갓 낳은 산모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큰 변화를 겪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굉장히 쇠약해진다. 축복과 기대속에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것만으로 이 모든 일들이 일단락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쇠약해진 산모의 몸과 마음이 임신전의 건강한 상태로 회복된는 데는 대략 산후 6주에서 8주가 소요되는데 이를 산욕기라 한다. 이 산욕기에 얼마나 몸과 마음이 안정된 상태였느지, 산후조리는 잘 했는지에 따라 산모의 평생건강이 좌우된다. 실제로 임상을 하다보면 산후조리를 아예 하지 못하였거나 잘못된 산후조리법을 선택하는 바람에,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평생이라는 시간을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종종 접한다. 특히, 애초에 산후조리를 아예 못한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고도 부작용으로 큰 고생을 하는 산모를 볼때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수가 없다.
시중에 잘 알려진 여러 민간 산후조리법중에 가장 대표적인 방법중하나가 산후붓기를 제거하기 위해 호박중탕을 해 먹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호박이 부기를 빼준다 하여 산모들의 호박복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이 유행을 부채질 하듯 산후보양식으로 호박을 소개하는 민간요법 책도 눈에 많이 뜨인다. 그러나 예로부터 전해오는 그 어떠한 의학서적이나 농업서적에도 호박을 산후조리 음식으로 이용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출산후 생기는 부종은 신장이 나빠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임신 중 피부에 축적된 수분(세포외액의 증가)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다. 물론 임신중독증이나 임신 중 심하게 체중이 늘어난 경우에는 신장에 부하가 걸려 생기는 부종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부종이 아닌 부기라고 표현해야 옳다. 그러므로 출산 후 살빼기는 이뇨가 아니라 땀을 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출산 직후 산모의 신장은 생리적으로 기능이 활성화 되게 되는데, 늙은 호박의 이뇨작용을 확대 해석한 산후의 호박 복용은 오히려 이미 활성화 된 신장에 부담을 주게 된다. 게다가 호박을 먹다가 중단하면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호박은 오히려 산모가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본초강목’이라는 의서에 따르면 `기체’와 `습저’에는 호박을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기체’는 우울증과 같은 증세이고, `습저’는 몸 속에 수분이 많은 것을 뜻하므로 생리적으로 우울하고 출산 직후 세포외액의 증가로 체표에 수분이 많은 상태인 산모에게 호박을 복용케 하는 것은 오히려 수분과 열을 발생시켜 산후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으며, 드물게는 치명적인 산후후유증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또한 고전에는 산후에 `후’한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후’한 음식은 성질이 무겁기 때문에 산모가 먹었을 경우 기와 혈액의 순환을 방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호박은 육질이 텁텁한 대표적인 ‘후’한 음식이다.
산후 호박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은 실제 임상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어느 기관에서 관절 이상 등 출산 후유증으로 병원을 찾는 산모들을 조사해본 결과 대부분 출산 직후(산후 3일)부터 호박을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드물기는 하지만 이들 중 몇 명에게서는 임신중에는 없던 원인불명의 고혈압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산모에게 늙은 호박이 좋다는 구전은 출산후 산욕기가 지나 호르몬의 변화가 정상으로 돌아온 뒤, 즉 출산 후 한 두달이 지나서도 배뇨에 계속해서 이상이 있거나 다리쪽 부종이 유독 심한 경우에 복용하던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출산 직후에는 호박을 가급적이면 복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
출산 직후 옳바른 산후 조리를 위해서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민간요법에 기대지 말고, 기본적인 주의사항을 지키면서 가장 원칙적인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좋다. 우선 충분한 수면과 정신적 안정이 필요하며, 산후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적당하게 땀을 흘림으로 해서 내부에 남아 있는 불순물이 배출시킨다. 찬바람에 노출되는 것은 산후풍과 같은 출산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또 산후에는 기혈이 근본 허해져 있으므로 우선 잘 먹어서 여러 가지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좋다. 정확한 성분도 모른 채 무조건 남들이 좋다고 하는 보약이나 보양식을 먹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이런 일로 오히려 산후회복이 지연되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렇게 관리를 하여도 산모의 나이나 산후조리시의 환경에 따라 유난히 회복이 더뎌진다거나, 다른 여러가지 불편한 증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어디에 뭐가 좋다더라 하는 식의 민간요법을 따르기 보다는 반드시 숙련된 한의사와의 상담을 거쳐 올바른 한약을 처방받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