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의 배우 이원근은 18살 고등학생이 되어야 했다.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 고등학생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영화를 대하는 (’그물’이 먼저 개봉했으나 ’여교사’가 이원근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신인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무심결에 원래 그의 목소리 톤이 나오면 NG였다. 상대와의 대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또 명확하면 그것 역시 NG였다.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드러날 것 같아서였다.
이원근은 “NG라는 소리를 듣고 혼자 구석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톤 고민을 많이 했다”고 당시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후반부 효주(김하늘)에게 본 마음을 드러낼 때는 소름 돋는다. 그 역시 “대본을 읽을 때부터 소름이 돋았는데 감독님이 내 얼굴로 ’웃으면서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웃었다.
“오디션을 본 작품인데 처음 만난 감독님이 ’너 표정이 오묘하다. 무슨 생각하는지 절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재하라는 인물에 대해서 ’얘는 애처럼 보여야 한다’가 기본이었는데 다들 길거리 다니는 18살 고등학생 같은 느낌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감독님은 관객이 ’재하가 도무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번쯤은 생각하면 그것 자체로 성공했다고 생각하셨대요. 후반부 대사와도 연결되는 부분이죠.(웃음)”
내년 1월4일 개봉 예정인 ’여교사’(감독 김태용)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김하늘)가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온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과 자신이 눈여겨 보던 남학생 재하(이원근)의 관계를 알게 되고, 이길 수 있는 패를 쥐었다는 생각에 다 가진 혜영에게서 단 하나를 뺏으려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이원근은 김하늘, 유인영이라는 선배들 사이에서 나름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 연기 면에서 어떤 압박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제게 기회를 준 믿음 가는 감독님이고, 선배들도 괜히 선배가 아니잖아요. 연기력도 훌륭하고요. 감독님은 제게 ’조금만 일찍 와라. 조금 늦게 가라’고 하셨는데 선배들이 어떻게 연기했는지를 볼 수 있었어요. 선배들과 감독님이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는지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죠. 불편한 상황과 마주하면 ’내가 이걸 어떻게 말해!’라고 생각했는데 서로가 이야기하며 풀어나가는 걸 보고 자극제도 되고,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기기도 해 좋았죠.”
특히 김하늘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 말랑말랑한 로맨틱코미디로 호흡을 맞추길 원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많이 배워 좋단다. “선배님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선배님 모니터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선배의 눈동자가 어떻게 떨리는지 관찰했죠. 그걸 보고 눈동자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걸 배웠거든요? ’다음에 써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등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선배들의 다양한 연기를 보는 것만큼 큰 공부는 없는 것 같아요.(웃음)”
예고편 등을 통해 알려졌듯 이원근은 정사신도 소화해야 했다. 일부러 강한 척 연기했다. 그는 “베드신과 스킨십 자체를 주눅 들고 창피해하면 현장의 모든 분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으니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여교사’의 소재와 결말은 파격 혹은 충격적이다. 호불호가 갈릴 게 분명하다. 이원근은 다른 면도 같이 봐주길 바랐다. “감히 학생과 선생이라는 관계에서, 현실에서 일어나면 큰일 날 법한 일이긴 하지만 그건 감정적인 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이 인물의 감정을 비롯해 열등감과 질투심이 극단으로 다다르면 어떠한지에 대한 메시지, 계급 문제 등도 있으니 그런 시각을 통해 보면 편견이 있어도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인 역시 평소 열등감을 느끼긴 하지만 조심스럽게 대하려 한다는 그는 “열등감이라는 테두리에 갇히면 못 빠져나오더라. 열등감에 안 빠지도록, 최대한 노력한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살면서 크고 작은 질투는 하지만 나도 잘할 수 있다고 자기 합리화해요. 오디션 볼 때도 나보다 괜찮은 사람이 캐스팅되면 손뼉 쳐줘요. 나보다 좋은 점은 무엇인지 배우려고 노력해요. 배움의 자세가 없으면 성장이 더딜 거니까요”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