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의 꿈

누구나 이민 보따리를 들고 도착한 공항에서 우리모두 한 번쯤은 들었으며 등두리며 해주던 덕담이자 지향으로서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 한켠에 품고 있는 그림들이 있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 어떤이에게는 냉장고에 빼곡히 넘치는 그 일용할 양식의 모습으로 더러는 버선코처럼 미끈하게 잘빠진 캐딜락의 모습으로 또 어떤이에게는 붉은 벽돌이 박혀있는 이층집으로 아직도 보석처럼 가슴깊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31년에 James Truslow Adams가 처음으로 그의 저서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한때 우리 모든 이민자가 들어보고 누구보다도 세차게 품었던 지향으로서의 American Dream — 출신과 성분, 연고와 상관없고 우연에 의해서도 아니며 오로지 땀과 눈물과 노력으로 누구나 사회적 융기와 성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신념적 체계를 어메리칸 드림이라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민년수가 차고 아이들이 청바지 홋수를 늘리더니 어느덧 대학을 향해 떠났던 그들이 어느새 가정을 일구고 손자를 안겨주는 동안 우리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그 꿈을 이루었거나 적어도 이루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예외적 불행이 아니더라도 모든 뜀박질에 전원 일등은 없게끔 되어있는 것이 또한 세상 일이다.

 

 

시도하다 지쳐서인지 이제는 꿈이 아니라 한이 되어,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면서 오늘날의 아메리칸 드림은 Powerball에 당첨되어 미루어 왔던 오바마 케어의 벌금을 무는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같은 생활인이며 이민자로서 나의 성취가 혹 동료의 불운으로 얻어진 것은 아닐까하는 어지러운 심사 또한 부인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은근히 믿어왔던 한국마저도 우리가 떠나왔던 고향땅의 모습은 아니어서 빈부로 말하자면 정연할 정도로 자리잡힌 이른바 <있는 자>와 <없는 자들>의 확실한 구분으로 금수저니 은수저니 심지어 흙수저등 온갖 자조와 좌절이 차고 넘치어 비교적 비켜나 있다고 믿었던 우리마저도 학습된 무기력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물론 꿈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에게는 그지없는 찬사를 그리고 그 과정에 선 자들에게는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그러나 만약에 만약에 그 뜀박질에서 쳐져있는 나머지가 있어 아직도 길 위에 선 자로서 등번호를 걸고 포기하지 않고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응원과 성원의 갈채를 드리고 싶다.
우리 모두 한번쯤은 꿈을 잃고 후회와 한을 길러 버티었던 적이 있듯 흙과 바람속에서도 우리네 삶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었다는 어느 책 제목처럼 그 방향을 잘 잡아낸다면 우리들앞에 있는 삶은 의외로 잘 솎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슬그머니 이쯤에서 옛분들의 글을 그래서 인용해 본다. (大廈千間, 夜臥八尺, 良田萬頃, 日食二升) (心安茅屋穩,性定菜羹香)
천간이 넘는 대궐에서도 밤이 되어 눕고보니 고작 여덟 척이 아니되고, 좋은 밭이 아무리 많은들 하루 먹는 식사로는 고작 두 됫박밖에 되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도 평온하며 성품이 안정되면 된장풀은 나물국도 향기로운 것이다. 뭐 그 정도의 해석이 될 것이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삶의 모습은 조금씩 변용을 거듭하게 되어 진화 하겠지만 뭉뚱그려 보아 오히려 직시에 가까운 그런 옛분들의 삶을 바라보는 과녁과 자세를 어찌 시대착오라고만 꼬집어 경멸할 수 있으며 그것이 이 삶의 본질이 아니라고 누가 과연 잘라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