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 일에도 유별나게 슬픈 감정을 이입시키게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남들보다 유난히 자주, 유별나게 깊이 슬퍼하곤 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우리는 혹시 ‘내가 지금 우울증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러한 상태는 의학적인 기준에서 바라보는 ‘우울증’에 빠진 상태와는 좀 다르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우울증이란 기본적으로 ‘쉽게 슬퍼지는 상태’ 보다는, ‘슬픔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꾸만 우울해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울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우울증의 본질이다.
쉽게 말해, 작은 일에도 깊이 슬퍼하는 경향의 사람은 그저 우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며, 한번 슬퍼지면 도저히 그 감정에서 쉬이 헤어나오질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즉 누군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울한 생각을 하더라도 금방 그러한 감정을 떨쳐낸다면, 우리는 의학적으로 그의 상태를 ‘우울증’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한달에 몇 번만 우울한 생각을 할 지라도 일단 우울한 생각에 빠졌다 하면 몇 주씩 그 감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상태를 우울증이라 한다. 이는 한의학에서 몸이 괴로운 상태에 빠져가는 과정보다는, 괴로움에서 회복하지를 못하는 ‘자생력’이 부족한 상태를 질병이라 정의하는 것과도 일맥 상통한다.
우울증 치료의 핵심은 우울해 지지 않는 능력을 키우는 것에 있지 않다.
그러니 우울증이나 울화병과 같은 심인성 질환의 치료에서의 핵심은 ‘우울해 지지 않는 것’ 혹은 ‘밝은 생각을 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우울한 감정을 빨리 떨쳐낼 수 있는 회복력’을 키우는 것이 된다. 직장을 잃거나 자식이 속을 썩혀도 슬퍼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들이 생길 때면 차라리 필요한 만큼 충분히 슬퍼하고 빨리 그 감정을 털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울증에 거린 사람들은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부정적인 사건들을 겪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의식적으로 외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방법은 그 효율성에서 너무도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첫째로 우리가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 노력을 해도, 실제로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사회속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이렇게 가능하지 않은 ‘이상’을 지나치게 추구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우리를 끊임 없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되고, 오히려 반복되는 실패의 경험은 우리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둘째는, 설사 자기 쇠놰에 가까운 노력으로 마침내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과 관점’만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노력의 결과로 ‘위험을 알려주는 지표들에 둔감해지는’ 다른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부정적이고 불쾌한 감정 그 자체가 우리 몸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그러한 감정들은 많은 경우 일상 속에서 더 큰 피해나 손실을 막기 위한 ‘경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우울해 지지 않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사실상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몸을 통해 마음의 병을 고치는 한의학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우울증이나 울화병을 치료함에 있어 많은 부분에서 현대의학과는 구별되는 접근법을 취하는데,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접근법 보다는 오히려 물질적이고 신체적 접근법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이 그 중의 대표적인 차이점이다. 이는 한의학에서 우울한 생각의 시작은 마음에 그 책임이 있고 우울한 생각의 마무리(회복)는 내 육체의 건강 상태에 그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짜증나는 감정은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통해 조절하려 하고, 우울한 마음은 달거나 매운 음식의 섭취를 통해 조절하며, 지나친 기쁨이나 흥분은 호흡이나 명상법을 통해, 극심하게 쌓여진 분노는 땀을 흘리는 육체 활동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하는 식이다. 칼에 찔린 상처를 효율적으로 고치기 위해 꼭 칼이 필요한 것이 아니듯이, 마음으로 온 병을 고치기 위해 꼭 마음을 고쳐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