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한 벌

금수저, 은수저,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이다. 즉 금수저는 엄청 재벌에 속하고 은수저는 큰 부자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어느 누가 금수저인지 또는 은수저인지를 먼저 가린 후, 사귐을 고백한다고 했다. 또한, 결혼양식이 한 마디로 장난이 아니다. 부모가 아들에게 몇억이나 되는 아파트를 사 주었지만, 아들의 이름으로 명의 변경은 빠르다며 몇 년 후에 명의 변경을 해 주겠다는 말을 들은 아내 될 여자는 결혼을 취소해 버렸다. 차도 중고라 할지라도 외제 차를 가지고 있어야 여자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다니, 금수저나 은수저는 어느 정도 갖출 수 있겠지만, 동수저들은 그야말로 장가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남녀의 만남이 사랑이나 신뢰가 아닌 돈으로 계산되는 세상, 참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이혼했는지 아니면 사별했는지 또는 미혼모인지는 모르겠지만, “딸이 3살인데, 너무 어렵게 살다 보니 아이에게 입힐 옷 한 벌 변변한 게 없어요. 혹시 3살 된 아이가 입을만한 옷이 있으면 주세요.”라고 했다. 그랬다. 금수저건 땡 수저건, 그들은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고 우리가 안아야 할 사람은 바로 어려운 이웃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입을 만한 옷을 어디 가서 구할 수 있을까, 그래 구하기보단. 아예 몇 벌 사서 보내주는 게 맞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한다. 신발도 하나, 운동화도 하나, 그리고 장난감도 몇 개 챙겨 보내주면 그 선물을 받은 아이는 세상에서 금수저보다 더 행복한 황금 수저가 되지 않을까?

누군가가 “세상이 너무 시끄럽지요?”라고 묻는다. “네, 시끄럽지만, 저희는 저희 일만 하며 살렵니다.”라고 대답한다.

사실 우리가 개뿔이나 뭘 알아야 면장도 하고 급장도 하지, 아는 건 오직 단 하나, 먹고 살기 위해 뛰는 것 그것뿐이 아니겠는가. 추운 겨울에 갈 곳이 없어 움막집에서 달랑 담요 하나 걸치고 사는 사람들, 지적 장애를 앓는 딸을 간호하며 평생을 늙어버린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부모의 이혼 후,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매 맞으며 살아가는 두 아이는 먹을 것 없는 어려움으로 삶의 희망도 없었지만, 그래도 쉼터에 입소하면서 안정을 되찾는다고 했다. 아이가 말했다. “그래도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라고.

그렇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궐 같은 집도 아니고, 번쩍거리는 외제 차도 아니었다. 오직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힘겨운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떠한 희망만 있을 뿐이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가 풀릴 줄 알았는데, 경제가 풀렸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며 “글쎄요. 전 잘 모르니까 경제는 경제 님께 알아보세요.”라고 대답하는 내 말이 별로 기쁘게 들리지 않았는지 입을 삐죽인다. 경제가 풀리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지만,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들어갈 돈은 없을 것이다. 돈은 다 내 것, 어려움은 다 네 것, 이러니 없는 놈은 맨날 없고, 있는 놈은 맨날 있고, 조금씩만 서로 나눌 수 있다면 그야말로 누나 좋고 매부 좋은 일은 아닐까? 왜 누나도 좋고 매부도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직장에서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두었는데 이번 달 방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그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어떻게 당장 직장 그만두었다고 한 달 낼 방세가 없다는 거예요?”라고 하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인데 어쩌겠어요.”라며 내쉬는 한숨 소리가 듣기 거북스러워 귀를 막는다. 알고 보면 그 인생이나 내 인생이나 별다를 것도 없는 인생이건만, 일 할 땐, 천년만년 돈 벌 줄 알고 먹고 마시다 어느 날, 일 그만두니 살아갈 방도가 없는 인생들, 이럴 땐, 금수저는 아니더라도 동수저 한 귀퉁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동수저는커녕, 깨어져 조각난 동전 조가리도 없으니 아이고 두~야 어찌 살꼬.

그래 그것은 당신 인생이니 어쩔 수 없고,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3살 된 아기 옷을 장만하는 일이 먼저이다. 그 어린 것이 다른 아이 쳐다보며 엄마의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울먹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서글픈 마음, “그래요. 저희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잠시 시간을 주세요.”라고 하자 그녀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얼마나 그 아픔이 가슴에 싸였던 것일까, 대단한 것도 아닌 아이의 옷 몇 벌에 울먹이는 엄마의 마음이 애절하게 가슴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