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예수님이 태어나기 500년전 쯤의 일이다 우리에게는 오월동주로 유명한 바로 그 월나라에 서시(西施)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그 타고난 미모가 어찌도 그리 곱고 우아하던지 심지어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맑은 강물에 비쳐졌을 때 주변을 유영하던 물고기가 물에 비친 그 아름다운 서시의 모습에 도취되어 그만 헤엄치는 것도 잊어 버리고 몰입하다가 점점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그 후 뒷 사람들은 서시의 자태가 너무도 아름다워 그것을 감상하던 물고기를 강 밑으로 가라앉게 했다는 뜻으로 침어(沈魚)의 미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리따운 불세출의 미인이 오늘날로 말하면 심장병이나 가슴앓이 병이라도 앓고 있었던건지 가끔 가슴이 아플때면 가슴을 움키듯 살포시 두 손을 포개고는 통증을 참아내려는 듯 코잔등이와 미간에 살짝 고운 주름을 만들며 낯달같이 찡그리는 눈매가 너무 곱고 매력적이어서 마침내는 동네의 또래는 물론 이웃한 마을의 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그리고 일제히 따라하게 되는 그야말로 춘사(椿事)아닌 춘사가 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요즘말로는 문화적 Phenomena인셈인데, 어째튼 역시 미인은 예나 지금이나 무엇을 해도 이쁜 모양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효빈(效嚬) 즉, 찡그리는 것을 본받아 따라한다는 뜻을 남기게 되었으니 형편을 생각지않고 무턱대고 남을 흉내내어 웃음거리가 되거나 남의 비난을 받아 미움을 받을 경우 사용하게 되는 빈축(嚬蹙)을 산다는 말의 그 원형적 유래가 되었다.
Cranberry sauce 들큰한 터기를 먹고 Thanksgiving Day를 보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추석을 대신한다면 못내 섭섭해할 교포들이 많이 계실 것으로 안다. 그리하여 천장가득 피대 세차게 돌아가는 떡방아간의 추억은 없다하더라도 공연히 들떠 한국마켓에서 송편이라도 사오거나 배라도 한상자 들여나야 속이 좀 편할 것 같은 교포들이 있다면 어떤 면에서 우리는 동시대속에 두 문화권에서 산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생활의 현장은 이곳 미국이어서 얽혀 영향받고 또 배우고 이해하며 한편으로는 그리움과 익숙함으로 즐기고 찾게되는, 우리를 기른 한국쪽의 문화가 될 것이다. 그래서 교포신문을 구독하고 드라마와 문화적 누림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고국을 떠날 수 없는, 특히나 인터넷등의 발달과 그 보급으로 기껏 마우스 클릭 몇번으로 그 속속들이까지 알게되어 더욱더 그런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이 고약한 경우가 있다 문화의 알맹이로서 그 질을 가늠해 본다면 대부분은 잘사는 친정집 바라보듯 우쭐하고 뿌듯한 것이나 더러는 한류로 그릇되게 뭉뚱그려진 근거없는 것들도 있어 눈쌀을 찌프리는 것들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두 문화를 접하기에 이곳의 특유의 실용과 검소에라도 적응을 한 것인지 그쪽에서 날아온 허례나 턱없는 허식이 별나게 거슬리는 경우도 있어 그게 오직 나만의 문제로 국한된 것이라면 좋겠다.
난데없는 입성치레와 세계생산량의 팔할 이상이 한국과 일본에서 소비된다는 어느 회사 제품의 핸드백들, 그 또각거리며 걷는 나란한 행진 등, 피둥하게 나이든 축에 속하는 여인네의 보라색 머리염색까지 생경스러움을 넘어 눈뜨고 바라보기에도 폭력스러웠던 적은 혹 없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워낙 친정집일이라 지극히 조심스럽고 다소 민망하더라도 천편일률적인 유행의 따라쟁이 짓은 스스로 가소롭게도 생각도 해보고 좀더 가혹하게 말하자면 유행의 집단 히스테리적 쏠림 현상이나 부박한 <바보들의 행진> 같은 것에는 보다 냉담해지는 그런 문화적 주체성 내지는 곤조도 어쩌면 우리 교포들의 작은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멀게는 정체성 있는 교포 특유의 문화도 창출되고 걸러져 언젠가는 하나된 고향땅에서 두루 균형있게 좋은 점을 고루 취한 교포문화를 은근히 부러워 본받는 날도 있었으면 한다.
또한 가깝게는 Annandale나 Ellicott City의 한인타운이 영낙없는 영등포 시장통과 구별할 수 없다면 그것도 문화적 재앙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것이 단순한 취향의 충돌이라서가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2천500백년전 효빈(效嚬)과 빈축의 그 우새스러운 모습을 닮아서이기에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