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를 떠나며 지나온 발자취를… Flattop Mountain (2)

오전에는 비가 뿌려 점심 무렵이 지나면 비가 그친다는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여유있게 인디언들의 유적들과 삶의 흔적들을 모아 전시하는 헤리티지 센터에 들러 우리들 조상이기도 한 그들의 생활과 우리들의 과거와도 접목시켜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다를 접한 공원에서 산책도 하며 알래스카와의 이별주를 한잔 나누기도 하는데 어차피 자정 가까운 시간에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갈 스케줄이니 서두를 일도 없습니다.

브런치로 식사 해결하고 산으로 갑니다. 하늘과 바다의 푸른빛을 닮은 산. 플랫탑을 오릅니다. 너무도 짧은 여름 제대로 피워내지도 못한 알래스카의 야생화들이 마지막으로 저마다의 자랑으로 각색의 빛을 풀어 놓고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산 중턱의 들판에는 꽃보다 더 꽃다운 색으로 작은 나무들의 잎이 빛나고 있고, 드물게 보이는 블루베리가 가을 햇살에 영롱하게 반짝입니다.

멀리 베링 해를 건너오는 바람은 냉기를 품고 있어도 아직은 내 마음에는 가을이 차지하고 있어 시원하기만한데 바다 건너 첩첩하게 이어진 산들은 구름 띠를 두르고 있고 내륙으로 향한 산들은 만년설로 덮인 채 끝없이 이어지니 진정 산정으로 가는 길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처럼 여겨집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가을빛은 완연해지고 인생에도 쉼표가 있듯이 등반길에도 한 박자 쉬어가는 목 좋은 곳에 서면 발치에 펼쳐지는 앵커리지의 넉넉한 풍경이 더없이 평화롭기만 하니 함께 포근한 마음의 정화를 얻게 됩니다. 철마다 그려놓는 자연의 그 아름다운 풍경화. 이 보다 더 완벽한 예술가가 있을까 여겨집니다, 계절이 바뀌는 이런 시절엔 더욱 더 수려한데 자연은 한술 더 떠 사계절을 화판에 모두 담아 낼 때도 있습니다.
비좁은 마음에 이처럼 평화가 깃들게 하니 산은 꽃과 나무만을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성장시키는가 봅니다. 하여 우리는 산에서 그저 바라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가는 곳이기도 하는 배움의 장입니다.

정상입니다. 바쁘게 달려가던 시간도 여기서는 쉬어가는 듯. 깊은 고요가 주위에 가득하고 머물고 가는 구름과 함께 사연을 나눕니다. 멀리 열흘 동안 열심히 달려 올랐던 모든 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가는데 하늘을 찌를 듯이 놓이 솟은 나무들에 가려 비록 눈으로 확인 할 수는 없지만 어느 방향인지는 가늠할 수 있어 마음으로 읽어냅니다.

발치 아래에는 우리가 걸어 온 길이 또렷이 보이고 이리저리 끝없이 이어진 도시의 길들이 정착민들의 고단한 삶을 내려놓은 채 정연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기나긴 겨울 이 동토의 땅에 끊임없는 혹독한 바람으로 나무 한그루 없이 삭막하지만 오늘은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붉게 타오르는 산하를 보니 만추의 서정이 가득합니다. 어느새 한뼘 씩 붉어지며 황혼이 깃 드는 하늘. 스러지는 모든 것들이 마지막으로 빛을 발하면 슬프도록 아름다운데 가을도 노을도 인생도 그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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