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없었다. 더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죽음 속으로 떠나는 아내를 막연하게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몇 주 후에 있을 세상에 둘도 아닌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결혼하는 모습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갔다. “아들 결혼식은 보고 가야 해”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 지켜주지 못한 채 먼 곳으로 떠나갔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내가 아들의 결혼식장에 갈 수도 없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갈 줄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떠나간 아내에 대해 안타까움과 아내에게 다 해 주지 못한 사랑이 아픔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아들의 결혼식에 떠나간 아내에 대해 그리움을 홀로 가슴에 안은 채 기쁨의 결혼식이 아닌 아픔이 함께하는 결혼식이 될 것이었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더 많은 삶을 살아가야 할 그 나이에 아내는 떠났고 텅 빈 방에 자신 혼자 머물러 있는 것이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갈 사람은 갈 수밖에.”라고 말했지만,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이제 겨울도 지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건만, 그의 가슴엔 추운 겨울이 남아있었다. 새가 노래하고 아름다운 꽃이 만발할 봄에 아내의 손을 잡고 결혼하는 아들의 모습을 함께 지켜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여! 단 몇 주만 더 기다릴 수 없었단 말인가, 우리의 아들을 위해서? 그러나 주님의 뜻은 따로 있었던 것이리라. 고 마음을 다독이지만, 그는 떠나간 아내가 가슴에 남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꽃이 피는 이 좋은 날에 짙은 구름 속에서 궂은비를 뿌린다. 아마 떠나간 아내가 남편과 아들이 슬퍼하는 그 마음이 아파 흘리는 아픔의 눈물은 아닐까? 아내를 그렇게 떠나 보낸 그의 마음이 아파 하늘이 흘리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떠나갈 세상살이가 아니었든가, 떠나는 사람은 미련이 없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늘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여생을 그렇게 홀로 보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특정한 자에게만 오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 모두에게 찾아들 인생살이일 것이다. 나도 언젠간 그렇게 떠나갈 것이고 떠나간 나를 그리워하며 남편도 저렇게 아픈 가슴을 쓸어안고 살아갈 것이다.
죽음은 슬픈 것이다. 죽음이라는 자체가 슬픈 것이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그 아픔이 있기에 슬픈 것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 남은 사람은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먼 훗날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도 너도 그리고 우리가 모두.
사순절이 끝나면 부활의 기쁨이 찾아들 것이다. 부활이란 세상에서의 삶이 아니라 먼 세상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하니 그녀도 부활절에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남겨두고 온 남편과 아들의 모습을 보며 기쁨의 맛보며 천국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의 모습에 너무 처량한 마음에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가 그저 ‘남의 일인데 그렇게 마음이 아프냐?”라고 묻는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도 찾아올 죽음이기에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아플 뿐이다.
그러냐 어쩌랴!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길을 향해 이렇게 하루살이를 하는 인생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오늘의 슬픔은 내일 사라질 것이오, 오늘의 기쁨은 영원할 것 같지만, 인생길은 그리 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잠시 찾아온 오늘의 기쁨에 감사하며 내일 찾아올 슬픔과 아픔을 대비하며 살아가자. 그러면 아픔은 덜할 것이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축 처진 그의 어깨가 오늘은 무겁게 보일지언정 언젠가 찾아올 기쁨과 행복이 그의 가슴에 스며들 것이다. 안녕이란 말은 하지 말자. 우리는 죽어서도 만날 수 있는 부활이 있으니까!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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