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별

너무 가슴 쓰라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더는 견딜 수 없는 이민생활에 몸을 떨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더는 어떠한 대책도 마련할 수 없다는 결정을 하며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오직 고국이구나, 너 여기를 떠나 한국으로 가도 괜찮겠니?” 라며 딸의 손을 잡았다. 어쩌다 불법체류자가 되어, 아이의 학비를 지원받을 곳이 없는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왈칵하고 떨어져 내리는 눈물도 닦아내지도 못한 채 울고 있었다. “엄마, 괜찮아, 어디를 가든 엄마만 있으면 난 괜찮아.”라며 말하는 어린 자식을 바라보니 어머니는 더욱더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모녀는 짐을 꾸렸다. 다시는 오지 못할 미국 땅에서의 모든 미련을 훌훌 벗어버리기라도 하듯이 묵묵히 짐을 싸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지고 가야 할 것도 별로 없었다. 몇 개의 짐은 싸서 한국으로 보내고 가방 네 개를 들고 방을 나선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도움을 주시려고 하셨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었네요.”라고 말하는 젊은 엄마의 말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서 그녀의 손등만 어루만진다. 남편은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가 버렸고, 자식이 공부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온갖 노력을 다했건만, 확실하지 않은 신분 때문에 더는 미국에 머물러 있을 수 없어 남편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딸의 손을 잡고 그렇게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세요. 모든 것 다 잊으시고 고향에 가서 마음 편하게 사세요. 그리고 딸 공부도 시키고”라는 말 한마디로 이별을 고했다.

그들과 헤어지며 참으로 어찌해 볼 도리 없는 세상 삶이 너무 허무하다고 할까? 더 많은 것도 아니고 오직 딸이 학교만 다닐 수 있어도 미련도 욕심도 없이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을, 그나마도 부모로서 해 줄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 그저 안겨 오는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봄이 왔다고 하지만, 모녀의 가슴엔 북풍 같은 찬 바람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래, 안되는 것을 억지로 잡지 말자.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에 매달려 눈물로 사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접고 편하게 사는 것도 인생의 즐거움이 아니더냐”라며 웅얼거리며 내뱉은 내 말은, 내가 겪는 슬픔이 아니기에 스쳐 지나가는 말처럼 읊조릴 뿐이다.

이제 은퇴해서 둘이 여행이나 하며 살자고 약속한 그 말이 채 마르기도 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나가 버렸다. 살아가야 하므로 비나 오나 눈이 오나 일에만 매달려 살았고, 이젠 너와 나 행복한 남은 인생을 살아보자고 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을 감아버린 아내의 식은 몸을 붙들고 울던 남편, “저 혼자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습니까? 자식들은 제 나름대로 잘살고 있으니, 아내를 고향 선산에 묻어주고 저는 아내 곁에서 아내와 함께 이야기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노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러세요. 부디 고향에 가셔서 아내분과 이야기 많이 하시면서 그렇게 지내세요.”라는 말이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많은 날을 발버둥 치며 살아왔던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하여 우리는 그렇게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아왔더란 말이더냐, 이제 너와 내가 함께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며 살아갈 날만 있을 줄 알았건만, 네가 가니 나도 네 곁으로 갈 날만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던가,

“아가야, 가난하지만 아버지가 없어도 우리 행복하게 살아가 보자꾸나!”라는 어머니의 그 기막힌 시련을 누가 알 것이며. “여보, 당신이 없는 허무한 이 세상일지라도 당신 옆에서 남은 생을 살려 하오.”라고 중얼거리는 남편의 모습이 나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행복하세요.”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그들을 떠나보내고 있었을 뿐이다.
딸은 아빠의 유골을 품에 안고 눈시울 적시며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고, 아내를 잃은 남편은 아내의 유골을 품에 안고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뭉게구름 두둥실 거리는 하늘을 날아가며 그들은 지겹고 지겨운 이민의 삶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자신에게 찾아올 작디작은 희망을 품으며 그렇게 떠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좋은 날만 있을 겁니다. 잘 가세요.”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그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그들의 앞날에 어둠의 빛이 아닌 밝은 태양이 영원히 비추어 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