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뉴욕의 Montefiore Medical Center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외래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데 신경과 교수인 Dr. Sparr가 급하게 필자를 찾았다. 자기에서 환자가 찾아 왔는데 진찰을 해보니 신경과 질환이 아니고 통증 질환이다. 그런데 자기가 보기에 힘줄의 질환인듯해서 다시 재활의학과에 예약을 하라고 했더니 환자가 울면서 통증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다음 예약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Dr. Sparr가 필자를 찾은 이유는 필자가 그 직전 달에 신경과에 파견근무를 했었기 때문에 필자를 잘 알아서 그런 것이지 이 질환의 치료를 필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어쨌거나 무슨 일인가 싶어서 윗 층에 있는 신경과 진료실로 올라갔다. 환자는 중년의 흑인 여성이었는데 역시나 정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간단히 진찰을 해보니 “드 퀘르벵씨 증후군”이라는 손목의 힘줄 질환이었다. 이 질환은 ‘단 무지 신근’과 ‘장 무지 외전근’이라는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근육의 힘줄이 손목을 지나가는 부위에서 염증이 생겨서 손목의 통증과 움직임의 제한, 부종 등을 가져오는 질환이다.
이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흔히 손목의 관절염이 아닌가 의심하고 병원을 찾게 되는데 손목의 관절염이 동반된 경우도 종종 보지만 통증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개 관절이 아니고 이 두 가지 근육의 힘줄의 염증이다. 이 흑인 환자의 경우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약을 먹고 기다리라고 할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일단 주사요법을 시행하고 물리치료 처방전과 약물 처방전을 써 주었는데 주사를 맞고 나서 통증이 너무 좋아져서 매우 기뻐하였다.